제자들 선교회 수원지구

우리들의 이야기

소개합니다

캠퍼스소식

사역자소식

맏가지소식

회원정보실

아주대동방

수과대동방

수여대동방

경희대동방

한세대동방

푸른가지회

중보기도실

나눔터

채플메세지

리민수칼럼

선교게시판

인물자료실

일반자료실

사역자료실

일반사진첩

사역사진첩

이달의행사

이달의후원

  home :: 토론실


0
 2336   117   1

이        름  
   대표선교사 (2019-11-25 07:45:09, Hit : 16, Vote : 0)
제        목  
   ★<아침묵상>히브리서 강해!(7-13장)
......


대표선교사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
(히7:1-3)
◆본문
1.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2.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3.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해석과 설명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1절)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본 장은 본서의 가장 중심 되는 내용을 논술하는 장이다. 이러한 본장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이 레위 지파의 제사장직 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이를 위하여 저자는 먼저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구약의 신비적 인물이었던 멜기세덱에 대해 논하고, 그 특성을 그리스도께 적용시키고 있다. 창14:17-20에 보면 멜기세덱은 아무런 사전 언급이나 그의 족보에 대한 소개 없이 갑자기 등장하고 있다. 즉 아브라함이 자신의 조카 롯을 포로로 잡아갔던 이국의 4왕들을 추격하여 그들을 쳐부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살렘왕 멜기세덱이 갑작스레 아브라함에 나타났던 것이다. 한편 ‘평강’이란 의미를 지닌 이 ‘살렘’에 대해서는 예루살렘을 가리킨다는 견해와 세겜 골짜기의 ‘살렘’을 가리킨다는 견해가 있으나, 예루살렘의 옛 지명으로 추정하는 학자들이 많다(시76:2). 그렇다면 멜기세덱은 고대 예루살렘의 왕이었던 셈이다. 다음으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다름 아닌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던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다(창12:1). 여기서 ‘지극히 높다’는 말은 아무도 그에 미치지 못할 하나님만의 초월적 신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멜기세덱은 살렘왕으로서 또한 이 여호와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는데, 제사와 정치가 명확하게 분리되지 않았던 고대 사회에서는, 이처럼 왕이 사제직을 동시에 겸하기도 했다. 이러한 멜기세덱의 이중직임은, 레위 지파 중 아론 자손과의 분명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는데, 아론 자손은 오직 제자장직만을 수행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직임의 우월성을 예시해 준다. 즉 그리스도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던 인물인 멜기세덱의 실체에 해당하는 그리스도 역시 아론 계통의 제사장들과 달리 왕권과 제사장직을 동시에 지니신 분이라는 것이다. 한편 이처럼 본서 저자가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들보다 그리스도께서 더 우월하신 대제사장이심을 논하고 있는 이유는 히6:20에서 언급한 바 있다.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 및 그와 연합한 왕들을 물리치고 돌아 올 때 멜기세덱이 그에게 나타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축복한 사실을 가리킨다. 본서 저자가 이 같은 사실을 언급하는 이유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더 높은 자였음을 증거하기 위함이며(7절), 궁극적으로는 이 같은 사실을 그리스도께 적용하기 위함이다.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2절)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십일조의 효시를 보여준 사건으로 멜기세덱의 축복에 감사하기 위해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 및 그와 연합한 왕들을 물리치고 얻은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바친 사건을 가리킨다(창14:20). 저자가 이 같은 사실을 언급하는 이유는 아브라함의 그러한 행위가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을 인정한 행위였음을 증거하기 위함이며, 궁극적으로는 이를 그리스도께 적용하기 위함이다. 즉 멜기세덱은 아론 계통의 제사장 직분이 세워지기 이전에 이미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인정받은 자였으며,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세우신 분이시다.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여기서 ‘의의 왕’과 ‘살렘 왕’은 ‘멜기세덱’이라는 이름과 그가 통치하였던 ‘살렘’의 뜻을 풀어서 설명한 것이다. 즉 히브리어로 멜기세덱(말키체덱)은 ‘나의 왕은 의이시다’는 뜻이다. 그리고 ‘살렘(솰렘)’은 ‘평강’이란 뜻으로 예루살렘의 옛 지명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저자가 이 같은 멜기세덱의 이름과 그가 통치한 살렘의 뜻을 설명하고 있는 이유는 그리스도와의 연관성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즉 의와 평강은 그리스도께서 지니신 속성으로 그분은 장차 공의로 사람들을 통치하실 자이며(사9:7), 사람들에게 참된 평강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시다. 저자는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속성을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인 멜기세덱에게서 찾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3절)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이는 보통 출신성분을 밝히기에 부끄러운 천한 신분이나 사생자를 뜻하는 표현이다. 때문에 유대인들은 멜기세덱의 기원에 관하여 갖가지 추측을 했다. 어떤 이들은 그를 미가엘 천사라든가, 노아의 아들인 셈의 후손등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본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성경에서 멜기세덱의 부모나 족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그가 제사장이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사실 레위 지파 제사장의 경우, 아비는 아론의 후손이어야 하고(출28:1) 어미는 레위 지파의 정숙한 여인이어야 했다(레21:7). 그러나 멜기세덱이 제사장이 된 것은 그 같은 조건을 초월한 것으로서,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의 그림자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저자는 멜기세덱을 신적 존재나 반신적 존재로 높이기 위해서 본절을 기록 한 것이 아니다. 단지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영원한 제사장직을 예시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아론 계통의 제사장 이전에 하나님께 기원을 둔 제사장 멜기세덱이 있었는 바 그는 곧 영원한 대제사장 되시는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멜기세덱이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다’라는 말은 그가 태어나지도 않았다거나 죽지도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성경에 멜기세덱의 출생과 죽음에 대한 기록을 찾아 볼 수 없음을 의미할 뿐이다. 그런데 본서 저자는 이를 근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와 비교하여 외형적 유사성을 삼고 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시작도 끝도 없으시며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이신데, 이는 그 시작과 끝에 대한 언급을 찾아 볼 수 없는 멜기세덱의 경우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이는 멜기세덱이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는 분명한 사실(창14:18)과 달리 그의 출생과 죽음에 관한 성경의 기록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으므로 그를 영원토록 제사장으로만 기억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멜기세덱의 실체에 해당하는 그리스도는 본질적으로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으로서, 제사장 직임 또한 영원한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요약/적용
◦멜기세덱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히7:3)
“(멜기세덱은)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아멘!
이 말의 의미는 보통 사생자를 뜻하는 표현이다.
저자는 멜기세덱의 부모나 족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그가 제사장이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레위 지파 제사장의 경우, 아비는 반드시 아론의 후손이어야 하고(출28:1)
어미는 레위 지파의 정숙한 여인이어야 했다(레21:7).
그러나 멜기세덱이 제사장이 된 것은 그 같은 조건을 초월한 것으로서,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의 그림자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저자는 멜기세덱을 신적 존재로 높이기 위해서 기록 한 것이 아니다.
단지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영원한 제사장직을 예표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멜기세덱이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다’라는 말은
그가 태어나지도 않았다거나 죽지도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이는 성경에 멜기세덱의 출생과 죽음에 대한 기록을 찾아 볼 수 없음을 의미할 뿐이다.
저자는 이를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경우와 비교하여 외형적 유사성을 삼고 있다.즉 그리스도께서는 시작도 끝도 없으시며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이신데,
이는 그 시작과 끝에 대한 언급을 찾아 볼 수 없는 멜기세덱의 경우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이는 멜기세덱이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는 분명한 사실(창14:18)과
달리 그의 출생과 죽음에 관한 성경의 기록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으므로
그를 영원토록 제사장으로만 기억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멜기세덱의 실체에 해당하는 그리스도는 본질적으로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으로서, 제사장 직임 또한 영원한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2019/11/25   

대표선교사
 ::   레위지파의 제사장들보다 우월한 멜기세덱!
(히7:4-10)
◆본문
4.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5.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6.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7.논란의 여지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8.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9.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
10.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

◆해석과 설명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4절)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4-10절까지는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바쳤다는 사실을 통하여 멜기세덱이 제사장 직분이 레위 제사장 직분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이는 아브라함이 자신의 조카 롯을 포로로 잡아갔던 그돌라오멜 및 그와 연합한 왕들을 추격하여 격파하고 그들로부터 탈취한 전리품 중 가장 좋은 것으로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사건을 가리킨다.
☀참고-십일조(tithing)
'tithe'는 '1/10(tenth)'의 옛말로서 <십일조>란 ‘10퍼센트의 의무’라는 뜻이다. 재산이나 소득의 1/10을 신에게 바치는 구약성서의 관습을 가리킨다. 물론 그 재물은 실제로 신에게 가는 게 아니라 빈민을 돕거나 신의 일을 대신하는 사제와 레위족에게 돌아간다. 독실한 유대인들은 십일조를 엄격히 지켰다. 예수는 십일조에 정성을 들이는 사람은 채소나 양념까지도 1/10을 신에게 바친다고 말했다. (예수는 또한 십일조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반드시 선하거나 도덕적인 사람은 아니라고 말했다.)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은 십일조가 꼭 필요한지에 관해 견해가 일치하지 않았다. 다만 빈민을 돕는 것은 선한 일이라는 데만 동의했을 뿐이다. 신약성서는 반드시 10퍼센트를 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교가 전 유럽에 확산되고 확고한 종교로 자리 잡게 되자 십일조는 좋든 싫든 모두의 의무가 되었다. 미국처럼 국교라고 할 만한 종교가 없는 나라의 경우, 교회는 십일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고 그냥 좋은 일이라면서 십일조를 강조한다. 자발적으로 십일조를 하거나 그 이상을 내는 사람도 있지만, 1/10이 총소득을 기준으로 하는지 순소득을 기준으로 하는지에 관해서는 견해차가 있을 수 있다.
순소득일 경우 국세청에서 세금을 떼어낸 나머지가 십일조의 대상이 된다. 신도들은 주로 일요일 예배 시간에 접시나 바구니에 십일조를 낸다. 또 우편으로 송금하기도 하고, 은행계좌로 이체하거나 신용카드로 계산하는 경우도 있다. 10퍼센트를 넘는 부분은 십일조가 아니라 '공물'로 간주된다. 십일조는 신에게 의무적으로 바치는 것이지만 공물은 자신을 위해 바치는 것이라는 차이가 있다. 교회에 십일조를 내지 않을 경우 신이 모종의 재정적 부담을 지워 자기 재산에서 '공제'한다고 믿는 사람도 있다. 이런 믿음은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신의 것을 훔치는 짓이나 다름없다는 말라기 3장의 내용에 의거한 것이다. 교회에서 매년 '의무의 일요일(Stewardship Sunday)'를 지정해 목사가 십일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
과거에는 십일조를 가축이나 농작물 같은 재물로 바쳤다. 오늘날은 거의 돈으로 낸다. 십일조는 성직자나 교회 직원의 급료, 건물 보수, 그리고 자선 사업에 사용된다. 그리스도교에 관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부자보다 중·하층민이 십일조를 더 충실하게 지킨다는 점이다. 실제로 십일조가 많이 걷히는 교회 조직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신도들이 많다.(『바이블 키워드』, 2007. 12. 24., J. 스티븐 랭, 남경태)
●성경에는 ‘십일조’라는 말이 51곳에 기록되어 있다. 이 중 신약성경에 3곳 기록되어 있으며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것은 단 한번 이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23:23, 눅11:42)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5절)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
레위 지파 중에서도 하나님의 특별한 소명에 의해 제사장직을 담당하도로 구별 받은 아론 가문의 자손들을 가리킨다(출28:1, 40-43).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여기서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란 레위 지파의 아론의 자손도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에게서 비롯된 동일한 후손들임을 의미한다. 한편, ‘허리’는 ‘힘의 근원’을 의미하기도 하나 여기서는 ‘생식의 근원’을 의미한다(창35:11). 저자가 본 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이처럼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이 일반 백성과 다름없는 동일한 아브라함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그들로부터 십일조를 취할 수 있었던 것은 하님께서 율법으로 그렇게 규정해 놓으셨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이다.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6절)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레위지파 제사장들은 율법에 따라 백성들에게서 십일조를 받았었다. 그러나 멜기세덱은 레위 지파에 속한 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에게 십일조를 받았다. 이러한 사실은 레위 지파 제사장들보다 더 우월한 멜기세덱의 우월성을 보여 주는 증거다. 그런데 이처럼 그리스도의 예표적 인물인 멜기세덱이 레위족보에 들지 아니한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레위지파 제사장보다 우월했던 것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께서 레위 지파 자손은 아니더라도 레위 지파의 제사장 보다 더 우월한 제사장이심을 예시해 주는 것이다.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여기서 ‘약속 얻은 자’란 하나님께로부터 가나안 기업에 대한 약속과 자손 번성에 대한 약속을 받은 자인 아브라함을 가리킨다(창12:1-5). 멜기세덱은 이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과 그 연합군을 격파하고 돌아올 때에 그에게 나타나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을 빌었었다(창14:17-20).
◦‘논란의 여지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7절)
‘논란의 여지없이’
이것은 ‘모든 것을 다 제처 놓고’란 뜻으로 이는 곧 ‘논쟁의 여지없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축복한 사건이 지니는 의의를 설명하는 구절이다. 그것은 바로 멜기세덱이 신적 권위를 지니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인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베풀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축복할 때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권위를 지니기 있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남에게 축복을 베푸는 것은 신분상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살 수 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약속을 받은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멜기세덱에게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은,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더 높은 자였으며 그만한 권한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멜기세덱도 실상은 그리스도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다.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8절)
저자는 그리스도의 전형인 멜기세덱의 우월성을 ‘죽을 자들’과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간이 차이를 통해서 입증하고자 했다. 본 절에서 ‘여기는’은 레위 지파에 속한 제사장들을 지칭하는데 이들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육신상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자들이었다. 이러한 그들의 죽음은 그들의 제사장 직분 수행과 그들의 십일조 수령 행위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에 반해 ‘저기는’은 멜기세덱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이다. 물론 여기서 멜기세덱이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라는 말은 멜기세덱의 육체적으로 죽지 않았으며 영원히 사는 자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3절의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와 같은 의미의 말로서 멜기세덱의 출생과 죽음에 관한 성경의 기록이 없음을 뜻한다. 그러나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3절)고 칭함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레위 지파 제사장들과 멜기세덱의 차이점이다.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9-10절)
본문에서 저자는 멜기세덱의 우월성을 아브라함의 후손인 레위인들과 연관시켜 입증하고 있다. 레위지파 제사장들은 율법의 규정에 따라 백성들로부터 십분의 일을 받을 권리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그러한 그들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멜게세덱의 제사장직의 우월성을 증거 해 주는 것이다. 물론 레위 지파 제사장들이 직접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칠 때에 그들은 아직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위인들은 혈통상 아브라함 후손이며 아브라함은 그들의 조상으로서 그들을 대표하는 위치에 있는 자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것은 그들 모두를 대표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즉 아브라함과 레위 자손들은 그들 모두를 대표하는 자인 아브라함 한 사람 안에서 연합되어 둘다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셈이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다’는 말이 바로 이 뜻이다. 또한 이것이 기독교의 ‘대표와 연합의 원리’다.

◆요약/적용
◦기독교의 대표와 연합원리!(히7:10)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 아멘!
저자는 멜기세덱의 우월성을 아브라함의 후손인 레위인들과 연관시켜 입증하고 있다.
레위지파 제사장들은 율법의 규정에 따라
백성들로부터 십분의 일을 받을 권리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그러한 그들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멜게세덱의 제사장직의 우월성을 증거 해 주는 것이다.
물론 레위 지파 제사장들이 직접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칠 때에
그들은 아직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위인들은 혈통상 아브라함 후손이며
아브라함은 그들의 조상으로서 그들을 대표하는 위치에 있는 자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것은
그들 모두를 대표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즉 아브라함과 레위 자손들은 그들 모두를 대표하는 자인
아브라함 한 사람 안에서 연합되어 둘다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셈이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다’는 말은 바로 이 뜻이다.
또한 이것이 기독교의 ‘대표와 연합의 원리’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둘째 아담인 것이다.
 [2019/11/28   

대표선교사
 ::   더 좋은 소망되신 예수 그리스도!
(히7:11-19)
◆본문
11.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12.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13.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14.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15.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16.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17.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18.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19.(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해석과 설명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11절)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본 절은 레위 지파 제사장직의 불완전성을 들어 완전한 제사장직을 수행할 자인 그리스도께서 출현하여 앴던 필연성을 논하고 있다. 이는 레위 지파 제사장들이 인간의 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 없음을 뜻한다. 사실 레위 지파 제사장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 가지로 범죄 할 수 밖에 없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자신들을 위해서도 속죄 제사를 드려야 했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죄 문제를 온전하게 해결해 줄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27절).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여기서 ‘그’는 ‘레위 계통의 제사장 직분’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 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레위 계통의 제사장 제도를 바탕으로 하고 율법을 부여 받았다는 말이다. 이는 곧 제사장 직분과 율법과의 긴밀한 상관 관례를 보여 준다(12절). 사실 레위 계통의 제사장 제도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구약 율법, 그 가운데에서도 의식법 규정에 따라 세워진 제도다. 한편, 본 절에 괄호가 있는 것은 헬라어 사본에 다라 본문에 본절 이 생략되어 있는 것도 있음을 표하기 위해서다.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이것은 레위지파의 제사장직이 인간이 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를 완전히 해결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제사장이 필연적으로 요구되었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곧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이 레위 지파의 제사장직과 달리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 완전한 것이며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12절)
유대인들은 레위 지파 아론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직을 절대적이고 영원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저자는 이 제상장직이 바꾸었다고 주장한다. 유대인들은 레위지파 제사장직의 절대성을 그것이 모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율법에 기초한 것이라는 점에 근거해 주장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모세의 율법을 영원불변 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제사장직에 변역(變易-변화)이 일어났음을 밝히고 있다. 이는 모든 제사장직이 율법에 그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며, 율법 역시 불완전하여 바뀔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성경은 율법이 사람의 죄를 깨닫게 해 줄 뿐 죄를 없이 할 수는 없다(롬3:20). 그래서 그 해결 방책을 제시해 주는 복음이 요구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인류의 죄를 속하는 영원한 속죄 제사를 성취하셨다. 따라서 더 이상 레위지파의 제사장들이 드리던 것과 같은 제사가 필요 없게 되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13절)
여기서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란 이스라엘 12지파 중 레위 지파가 아닌 다른 지파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유다지파를 가리킨다. 그리고 그 지파에 ‘속한 자’란 14절에서 밝히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본 절에서 저자가 말하고 자 하는 바는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레위 지파의 제사장 계열에 속하여 있는 분이 아니라, 유다 지파의 다윗의 혈통에서 난 분임을 상기시키고자 함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제사장직의 변역’(12절)이라는 것이다. 즉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 직분이 율법의 규정에 따라 레위 지파의 아론 자손에게만 승계되었었으나(출29:1-9), 예수 그리스도는 레위 지파가 아닌 유다 지파의 후손이었음에도 제사장직을 수행한 것이다.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14절)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여기서 ‘우리 주’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대상이자 삶의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다 지파’의 계보를 좇아 나실 것은 이미 구약 성경에 분명하게 예언되었다(창49:10, 사11:1). 즉 그는 혈육적으로 유다 지파에 속한 다윗의 후손되신 자이다(렘23:5). 신약 성경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다 지파의 다윗이 후손으로 나실 것이라는 구약의 예언이 분명히 성취되었음을 말하고 있다(마1:1).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모세의 율법에는 유다 지파에서 제사장직을 수행할 자가 나오리라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뜻이다. 사실 모세 율법은 레위 지파, 그 중에서도 아론의 자손들만이 제사장직을 수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유다 지파에 속한 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신 것은 곧 그의 대제사장직이 율법 규정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율법을 제정하신 하나님의 뜻에 의거한 전혀 새로운 차원의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15절)
여기서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6:20). 구약의 메시야 예언시에도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에 의해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시110:4)으로 불리움 받을 자임을 묘사하고 있다.
한편, ‘더욱 분명하도다’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여러 해석이 있다.
①레위 계통의 제사장직이 불완전한 것이라는 점.(벵겔외)
②레위 계통의 제사장직과 율법이 변역하였다는 점.(알포드외)
③그리스도께서 유다 지파에서 나셨다는 점.(쟌)
④레위 계통의 제사장직 보다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이 우월한 것이라는 점.(란네)
이 네 가지 견해는 모두 타당성이 있음으로 모든 견해를 종합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16절)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신 것은 율법의 규정에 따라 아론의 반차를 좇아 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11절). 여기서 ‘육체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이란 모세 율법을 가리키는데 그것이 제사장 될 자의 혈통적, 신체적 자격 요건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음을 뜻한다(출28:1).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영원한 제사장적 직무를 하나님에게 위임 받아 ‘제사장’이 되었으므로(5:10), 제사장이 되기 위하여서는 율법에 규정된 대로 아론 자손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뛰어 넘으신 것이다.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이것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의 특성과 기원을 분명하게 나타내주는 말이다. 여기서 ‘불멸의 생명의 능력’이란 그 자신이 근본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생명력을 지닌 그리스도의 신성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율법이 아니 이러한 영원한 생명에 의해서 된 것이니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가리켜 ‘영원한 제사장’(시100:4)이라 칭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그 같은 ‘불멸의 생명의 능력’에 근거한 것이기에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영원한 생명을 제공해 주실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구원할 구원자시며, 영생을 주실 분이심을 강조함으로서, 이같이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배척하는 유대교도 및 그 밖의 모든 불신자들의 어리석을 지적한 것이다.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17절)
저자는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에 대하여 증거 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으로 불리움을 받게 될 자임을 예언한 시110:4의 말씀을 인용(증언)한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율법의 규정과는 무관한 것이었음을 다시금 증거 해 준다.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18-19)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본 절은 새로운 제사장직, 즉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이 낳은 결과가 두 가지로 언급되어 있다. 본 절에서는 첫 번째 결과로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해졌다’는 사실이다. 이는 제사장직이 아론의 반차를 좇아 계승되어야 한다는 율법의 규정이 연약하며 무익하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폐하여 버리셨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연약하다’는 말은 구약 제사장 직분이 인간의 죄를 완전하게 속량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무익하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인류의 모든 죄를 속하는 영원한 제사를 성취하셨기 때문에 레위 계열의 제사장 제도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음을 뜻하는 말이다. 이 두 가지 이유가 구약 제사장직에 관한 율법 규정의 폐기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죄를 온전히 사해 줄 수 있는 영원한 대제사장시인 그리스도의 출현은 구약 제사장직에 관한 율법의 규정을 폐기하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것은 새로운 제사장직, 즉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이 낳은 결과가 두 가지 중 두 번째로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즉 율법은 단지 죄를 깨닫게 할 뿐 죄를 사해 주는 것이 아니므로 범죄 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회복하게 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롬3:20).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여기서 ‘더 좋은 소망’이란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한 대속 사역을 성취하심으로 그를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 제공해 주시게 된 참된 소망을 가리킨다. 그것은 곧 누구든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대속 공로를 힘입는 자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간다’라는 말은 구약 시대 당시 제사장이 백성들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성소에 들어가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구약 시대에는 이처럼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권리와 특권을 지닌 사람이 오직 제사장뿐이었다(레10:3).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제사장이 아닌 일반 백성들도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영원한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께서 온전하신 제사장직을 수행하셔서 하나님께 나가는 길을 열어 놓으셨기 때문이다(요14:6). 한편, 이러한 본 절은 훗날 종교 개혁자들이 부르짖었던 ‘만인 제사장설’의 근거가 되었다.(벧전2장)

◆요약/적용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운 이유!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히7:11)“ 아멘!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본 절은 레위 지파 제사장직의 불완전성을 들어
완전한 제사장직을 수행할 자인 그리스도께서 출현하요야 했던 필연성을 논하고 있다.
이는 레위 지파 제사장들이 인간의 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 없음을 뜻한다.
사실 레위 지파 제사장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 가지로
범죄 할 수 밖에 없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들을 위해서도 속죄 제사를 드려야 했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죄 문제를 온전하게 해결해 줄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
사실 레위 계통의 제사장 제도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구약 율법,
그 가운데에서도 의식법 규정에 따라 세워진 제도다.
즉, 레위지파의 제사장직이 인간이 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를 완전히 해결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제사장이 필연적으로 요구되었다.
그 새로운 제사장이 바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다.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레위 지파의 제사장직과 달리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 완전한 것이며,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단번에 우리를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된 것이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기억하며 살자!


더 좋은 소망!(히7:18-19)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아멘!

여기에는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언급되어 있다.
첫 번째는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해졌기 때문’이다.
이는 곧 제사장직이 아론의 반차를 좇아 계승되어야 한다는 율법의 규정이
연약하며 무익하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폐하여 버리셨음을 의미한다.
‘연약하다’는 말은 구약 제사장 직분이 인간의 죄를 완전하게 속량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가리키며,
‘무익하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인류의 모든 죄를 속하는 영원한 제사를 성취하셨기 때문에
레위 계열의 제사장 제도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음을 뜻하는 말이다.
이 두 가지 이유가 구약 제사장직에 관한 율법 규정의 폐기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하기 때문’이다.
즉 율법은 단지 죄를 깨닫게 할 뿐 죄를 사해 주는 것이 아니므로
범죄 한 인간가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회복하게 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롬3:20).
그래서 ‘더 좋은 소망’이 생기게 된 것이다.(19)
여기서 ‘더 좋은 소망’이란 그리스도께서 대속 사역을 성취하심으로
그를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 제공해 주시게 된 참된 소망을 가리킨다.
그것은 곧 누구든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대속 공로를 힘입는 자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특권을 지닌 사람이 오직 제사장뿐이었다(레10:3).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제사장이 아닌 일반 백성들도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영원한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께서 온전하신 제사장직을 수행하셔서
우리에게 하나님께 나가는 길을 열어 놓으셨기 때문이다(요14:6).
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2019/11/28   

대표선교사
 ::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히7:20-25)
◆본문
20.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21.(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22.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23.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24.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25.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해석과 설명
◦‘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20-21절)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본 절은 시편 110:4에 근거한 말이다. 즉 시110:4에는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라고 언급되어 있는데, 본서의 저자는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한 것이다. 한편 하나님의 맹세는 그 맹세한 바가 영원불변할 것임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히6:17 참조). 따라서 본 절은 레위 지파의 제사장직과 달리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된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이 영원불변할 것임을 나타내 준다.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레위계열의 제사장직과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제사장직간의 근본 차이점을 밝히고 있는 구절이다. 구약 시대 당시 아론 자손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맹세에 의해서가 아니라, 율법 중 의식법의 규정에 따라 세습적으로 제사장직을 승계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영원한 제사장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 즉 하나님께서 하신 맹세에 의해 제사장이 되셨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아니시기 때문에 자신이 말씀하신 것에 대해 뉘우치거나 바꾸시는 분이 아니시다(민23:19). 따라서 하나님의 맹세하신 바는 절대로 변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맹세로 보증된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 사역과 영원한 중보 사역으로 인해 무용하게 된 레위 지파 제사장직(22-25)과 달리 바꿔지거나 폐하여지지 않고 영원토록 유지됨을 학신 할 수 있는 것이다.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이는 시110편 4절의 인용이다.
한편, 19잘에 괄호가 있는 것은 헬라어 사본에 다라 본문에 본절 이 생략되어 있는 것도 있음을 표하기 위해서다.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22절)
여기서 ‘더 좋은 언약’이란 ‘새 언약, 즉 하나님은 성도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성도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그들의 죄가 모두 씻음 받으리라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가리킨다(8:10-13). 이 언약은 그리스도께서 중보자가 되시는 것으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죄 씻음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성령께서 그 성도들 가운데 내재하심으로 성도들이 영적으로 하나님과 그 분의 선하신 뜻을 알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새 언약은 구약 성경에 계시되어 있는 예전의 모든 언약들과는 달리 영원한 효력을 지니는 언약이다. 그 이유는 새 언약의 중재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살아계셔서 그것의 영원한 보증자가 되시기 때문이다. ’보증(헬,엥귀오스)‘는 법정 용어로 자신의 재산 또는 생명을 바쳐서라도 약속한 바를 책임지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기의 목숨을 희생하신 사건을 가리키고 있는데, 이 사건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신 새 언약을 보증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즉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당신의 몸으로 인류의 죄를 속하는 영원한 속죄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음으로 이제 누구든 그 예수의 피 공로를 믿고 의지하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이다(롬5:8-11).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23-24절)
레위 계통의 모든 제사장들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었음에 반해,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새로운 영원한 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사망의 권세에 굴복당하지 않는 존재이시므로 새 언약의 영원한 보증자가 되심(25절)을 논하고 있는 구절이다. 사실 과거 레위계통의 제사장들은 모두 죽을 운명을 지닌 인간들이었기 때문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그들의 직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 제사 직분은 교체되었고 제사장 수효도 많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그들의 제사장직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가 ’영원히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 즉 그분은 레위 제사장들과 달리 십자가상에서 대속 죽음을 당하신 후 죽음에서 부활하사 죽음을 정복하신 분이시기 때문에(마28:5-7)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않고‘ 영원히 수행되어지는 것이다. 더욱이 그분은 자신의 제사장직을 중간에 포기하시거나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지 않으셨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이제는 그 어느 때에라도 누구든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대속 사역을 믿고 그 공로를 힘입기만 하면 담대히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것이다(25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25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
여기서 ‘자기를 힘 입는다’는 말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의 효력을 믿고 그 공로를 의지하는 것을 가리킨다. 즉 이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림으로 돌아가신 것, 곧 나 자신의 죄를 속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믿고, 그 보혈의 피로써 죄 씻음 받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가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피로써 죄 사함 받고 그 동안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단절되었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가리킨다. 과거 구약 시대에는 백성들을 대표한 제사장만이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의 중보자로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신의 몸을 화목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영원한 제사를 드렸음으로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의 대속 공로를 힘입기만 하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여기서 ‘온전히’라는 말은 시간적으로 ‘언제든지(for all time)’라는 뜻과 내용적으로 ‘완전히(to the utter-most)’라는 뜻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구원하다’라는 말은 현재성과 미래성을 동시에 함축하고 있다. 즉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즉각적으로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영적 자녀가 된다는 점에서 구원은 현재적인 것이며(눅19:9), 그가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은 장차 그리스도 재림시에 주어지게 되는 것이라는 점에서는 구원은 미래적인 것이다(막10:29-30).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이 같은 구원의 절대적인 보증자이시다.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의 죄를 속하는 대속 사역을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다시 부활 승천하셨다. 이 같은 영원히 살아계시는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시면서(8:1) 자신의 속죄 사역에 근거해 성도들을 참소하는 사단의 고소에 맞서 성도들을 변호하고 계신다(롬8:34).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단번에 인간의 죄를 속하는 완전한 구속 사역을 성취하셨을 뿐 아니라, 또한 성도들을 위해 영원토록 중보하고 계시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성도의 구원은 절대적인 것이다.

◆요약/적용
◦더 좋은 언약의 보증!(히7: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아멘!
여기서 ‘더 좋은 언약’이란 ‘새 언약,
즉 하나님은 성도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성도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그들의 죄가 모두 씻음 받으리라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가리킨다(8:10-13).
이 언약은 그리스도께서 중보자가 되시는 것으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죄 씻음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성령께서 그 성도들 가운데 내재하심으로
성도들이 영적으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새 언약은 구약 성경에 계시되어 있는
예전의 모든 언약들과는 달리 영원한 효력을 지니는 언약이다.
그 이유는 새 언약의 중재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살아계셔서
그것의 영원한 보증자가 되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보증(헬,엥귀오스)‘이란 법정 용어로 자신의 재산
또는 생명을 바쳐서라도 약속한 바를 책임지는 것을 뜻한다.
즉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기의 목숨을 희생하신 사건을 가리키고 있는데,
이 사건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신 새 언약을 보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당신의 몸으로 인류의 죄를 속하는 영원한 속죄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음으로
이제 누구든 그 예수의 피 공로를 믿고 의지하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렸기 때문이다(롬5:8-11).
영원한 구원의 보증자 되신 주님을 찬양한다.



◦온전한 구원!(히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아멘!

여기서 ‘자기를 힘 입는다’는 말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의 효력을 믿고
그 공로를 의지하는 것을 가리킨다.
즉 이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림으로 돌아가신 것,
곧 나 자신의 죄를 속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믿고,
그 보혈의 피로써 죄 씻음 받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가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피로써 죄 사함 받고
그 동안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단절되었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가리킨다.
과거 구약 시대에는 백성들을 대표한 제사장만이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의 중보자로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신의 몸을 화목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영원한 제사를 드렸음으로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의 대속 공로를 힘입기만 하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라는 말은
시간적으로 ‘언제든지(for all time)’라는 뜻과
내용적으로 ‘완전히(to the utter-most)’라는 뜻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구원하다’라는 말은 현재성과 미래성을 동시에 함축하고 있다.
즉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즉각적으로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영적 자녀가 된다는 점에서 구원은 현재적인 것이며(눅19:9),
장차 주님의 재림시 완전히 성취된다는 점에서 구원은 미래적인 것이다(막10:29-30).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이 같은 구원의 절대적인 보증자이시다.
 [2019/11/30   

대표선교사
 ::   완전하고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히7:26-28)
◆본문
26.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27.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28.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해석과 설명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26절)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이러한 대제사장’은 자기를 의지하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시며 항상 살아 있어 그들을 위해 중보하시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25절). 그러나 그가 ‘우리에게 합당하다’는 말은 그러한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의 자격이 있다는 뜻이다. 즉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바 모든 인간을 구원할 수가 있는 자격과 조건을 갖추신 분인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으로 칭하고 있는 것은 구약 시대 당시 대제사장만이 속죄일에 모든 백성의 죄사함을 위한 제사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는데,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온전한 속죄 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이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온 인류이 죄를 속하기 위한 영원한 효력을 지닌 제사를 하나님께 단번에 드린 유일한 참 대제사장이신 것이다(27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함당한 대제사장이신 근거를 그분의 신적 속성에 의거해 밝히고 있는 구절이다. 즉 그리스도는 근본 하나님의 아들로서 죄와 무관한 ‘거룩한’ 분이시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성육신하셔서 인성을 지니셨기 때문에, 우리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모든 이에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를 범하시지 않으셧던 분으로서(4:15) ‘악이 없는’분이시다(롬16:18). 그리고 그처럼 범죄 하지 않으셔서 ‘도덕적 순결성을 지니신 분’이셨기 때문에 인류의 죄를 속하기 위한 온전한 대속 제물이 되실 수 있었던 것이다.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이는 그리스도께서 ‘근본적으로 죄인인 인간과는 다른 분’이심을 뜻한다고도 볼 수 있으나, 뒤에 나오는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와 연관 지어 ‘그리스도의 승천’을 뜻한다고 볼 수도 있다. 모두가 문맥상 해석에 문제가 없다.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그리스도의 승귀(昇-오를 승, 貴-귀할 예수님의 승천과 존귀하게 되심)’를 가리킨다. 즉 근본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의 죄를 속하는 대속 사역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친히 인간이 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낮아지셨다. 이것을 ‘그리스도의 비천(卑賤)’이라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예수를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신 것이다(빌2:10-11)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27절)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의 영원성과 우월성은 유일하고 반복될 필요가 없는 그의 대속 행위에 근거한 것이다.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그들로 역시 연약한 인간들이었고 죄인들이었던 까닭에 먼저 그들 자신이 죄를 속하기 위하여 그리고 백성들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매년 이스라엘 종교력으로 7월 10일의 속죄일 마다 반복하여 속죄 제사를 드려야만 했다(레4:16-29-34. 본 절에서 ‘날마다’라는 말은 그 같은 속죄 제사가 해마다 되풀이 되는 것이었음을 강조하는 말인 것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으신 자로서(26절), 그 자신을 위하여서는 속죄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으셨으나, 오직 온 인류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단번에 그 자신을 하나님께 화목 제물로 드려 영원한 대속 사역을 성취하셨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구약의 대제사장들이 반복하여 희생제물을 매개로하여 하나님께 속죄 제사를 드렸던 것과 대조적으로 친히 자신의 몸으로 단 한번 대제사장의 직무와 희생 제물의 역할을 완전히 수행하셨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저나는 9:11-12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보다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때문에 이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신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의 효력을 믿고 그 공로를 의지하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우리 앞에 활짝 열려 있는 것이다(요3:16).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28절)
본절은 히브리서7장 전체의 결론과도 같은 부분으로 다음 3가지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①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율법이 규정에 의거해 제사장이 되었으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맹세하신 약속의 말씀에 의해 제사장이 되셨다.
②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유한한 인간에 불과했으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토록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③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범죄 할 수밖에 없는 약점을 지닌 자들로서 온전한 속죄 제사를 드릴 수 없었으나, 그리스도께서는 죄 없으신 분으로서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함으로 온전한 제사를 드린 자이시다. 결론적으로 율법은 아무것도 완전하게 하지 못하며, 완전하고 온전한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만이 가능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누구든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대속 공로를 힘입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요약/적용
◦우리에게 합당하신 대제사장!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히7:26)“ 아멘!

‘이러한 대제사장’이란 자기를 의지하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시며
항상 살아 있어 그들을 위해 중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25절).
‘우리에게 합당하다’는 말은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의 자격이 있다는 뜻이다.
즉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께서 요구 하시는 바
모든 인간을 구원할 수가 있는 자격과 조건을 갖추신 분인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으로 칭하고 있는 것은
구약 시대 당시 대제사장만이 죄 사함을 위한 제사를 드릴 수 있었지만,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온전한 속죄 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이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온 인류이 죄를 속하기 위한
영원한 효력을 지닌 제사를단번에 드린 유일한 참 대제사장이신 것이다(27절).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함당한 대제사장이신 근거는
그리스도는 근본 하나님의 아들로서 죄와 무관한 ‘거룩한’ 분이시시기 때문이다.
온전한 대제사장이신 예수께서는 친히 대속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분이시다.


◦온전하신 영원한 제사장(히7:28)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본절은 히브리서7장 전체의 결론과도 같은 부분으로
다음 3가지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①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율법이 규정에 의거해 제사장이 되었으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맹세하신 약속의 말씀에 의해 제사장이 되셨다.
②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유한한 인간에 불과했으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토록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③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범죄 할 수밖에 없는
약점을 지닌 자들로서 온전한 속죄 제사를 드릴 수 없었으나,
그리스도께서는 죄 없으신 분으로서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함으로
온전한 제사를 드린 자이시다.
결론적으로 율법은 아무것도 완전하게 하지 못하며,
완전하고 온전한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만이 가능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누구든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대속 공로를 힘입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19/12/03   

대표선교사
 ::   더 좋은 약속을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
(히8:1-6)
◆본문
1.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2.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
3.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그러므로 그도 무엇인가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
4.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라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따라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
5.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6.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해석과 설명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1절)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여기서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이란 ‘위에서 말한 요점을 말하면’이라는 뜻이다. 이는 곧 본장에서 말하려는 내용이 지금까지 4:14-7:28에서 언급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의 우월성에 근거한 것임을 나타내준다. 또한 ‘이러한 대제사장’이란 인간의 죄를 속하는 완전한 속죄 제사를 하나님께 드린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러한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에 관해서는 본장은 물론 제10장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집중적으로 언급된다.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셔서 저를 믿는 모든 자의 죄를 속하기 위한 대속 사역을 성취하신 후 부활 승천하셔서 본래의 신적 영광을 회복하신 것을 가리킨다.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2절)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여기서 ‘성소’와 ‘참 장막’은 동격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성소가 곧 참 장막이라는 뜻이다. 성소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기온’은 ‘거룩한 장소’를 뜻한다. 그리고 ‘장막’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케네스’는 문자적으로 ‘천막(tent)’을 뜻한다. 이는 모두 모세 당시 하나님을 예배하던 처소이자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물이었던 ‘성막(tabernacle)’을 가리키던 말이다. 구약 시대 당시 제사장들은 이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백성들의 죄를 속하기 위한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그것은 구약의 거듭된 약속과 예언에 따라 성육신 하셔서, 십자가 수난을 통해 구속 사역을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사 지금은 ‘참 장막’인 하늘 처소(1절)에서 성도들을 위해 중보 사역을 행하고 계시는 것을 예표해 주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다(5절). 한편 ‘섬기는 이’란 이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성도의 구원을 위해 수고하고 계심을 나타내기 위한 말이다. 사실 성육신하셔서 대속 사역을 성취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부활 승천하셔서 하늘 처소에 계시면서 자신의 구속 사역에 근거해 성도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중보하고 계신 것이다.(7:25).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
‘모세의 성막’은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계시 받은 설계도대로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었다(출25:8-9). 이에 반해 ‘하늘 처소’는 하나님께 친히 조성하신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구절이다. 다시 말해서 하늘의 참 장막은 사람이 지은 것과 같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권능으로 세우신 것이다.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그러므로 그도 무엇인가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3절)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구약 시대의 대제사장이 매년 속죄일 마다 자신의 죄는 물론 온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해 하나님께 희생제물과 소제물을 바쳐 속죄 제사를 드렸던 것(7:27)을 가리킨다. 한편 소제물은 번제나 화목제를 드릴 때 함께 불살라 드리던 피없는 예물을 가리킨다(레2:1-6).
‘그러므로 그도 무엇인가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
여기서 ‘그’는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본 절은 과거 구약시대의 대제사장들이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속죄의 제물을 드려야 했듯이, 우리의 참 대제사장도신 예수 그리스도도 인간의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해 하님께 속죄의 제물을 드려야 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바칠 제물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그러기에 주님은 자신의 몸을 친히 희생제물로 드려 인간의 죄를 속죄하신 것이다. 여기서 ‘드릴 것’은 구약 시대이 대제사장들이 해마다 속죄제물을 드렸던 것과 달리,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번으로 영원한 효력을 이루는 희생 제물을 드린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언제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죄 사함 받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라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따라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4절)
여기서 ‘땅(헬,게스)’이란 하늘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여기서는 사람이 만든 장막, 곧 하늘 장막의 모형인 모세의 장막(5절)이 있는 곳을 가리킨다. 예수께서 땅에서는 결코 대제사장이 되지도 않았고 될 수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은, 성육신하셔서 구속 사역을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하늘에 올라간 분이시며, 하늘 처소에서 비로소 제사장직을 수행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의 혈통상 유다 지파의 자손이었음으로 율법의 규정에 의하여 레위지파의 자손만이 될 수 있는 이 땅에서는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지 않으셨다. 그 대신 그리스께서는 친히 자신의 몸을 희생 제물 삼아 인간의 죄를 속하기 위한 속죄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시고 난 후, 부활 승천하셔서 이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1절) 성도들을 위해 하나님께 중보하 는 영원한 제사장직을 수행하고 계시는 것이다(7:25)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5절)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여기서 ‘그들’은 4절의 ‘율법을 따라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을 가리킨다. ‘모형’은 원형을 본 떠 만든 ‘모조품’ 또는 ‘복사품’을, ‘그림자’는 원형을 통해 얻은 희미한 윤곽을 가리킨다. 이것들은 모세 당시의 ‘성막(tabernacle)’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하늘 성소(2절)의 모형에 지나지 않는 불완전한 것이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러한 성막에서 봉사한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들의 사역 역시 불완전한 것이었다는 것이 저자가 강조한 것이다.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이는 출25:40의 인용으로 이는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나타나 성막의 식양에 대하여 계시해 주신 사건에 대한 언급이다. 한편, ‘본’에 해당하는 헬라어 ‘튀폰’은 본래 ‘도장을 찍어서 만든 자국’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앞의 ‘모형(헬,후포데이그마티)’과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6절)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여기서 ‘그러나 이제’라는 말은 앞부분의 내용을 일거에 반전시킨다. 이것은 이후로 언급되는 내용은 앞에서 언급된 내용과 정반대가 되는 것이라는 것을 강조한 표현이다. 또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로 외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직능의 탁월성을 의미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이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직 직분보다 월등하게 탁월하다는 의미다. 실제로 인류의 죄를 완전히 속량하신 그리스도의 제사장직과 인간의 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여 반복해서 속죄 제사를 드려야 했던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은 그 탁월성에 있어서 비교가 되지 못한다(7:26-28).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여기서 ‘더 좋은 약속’과 ‘더 좋은 언약’은 실제로 같은 말로 8-12절에 언급되어 있는 하나님의 ‘새 언약’을 가리킨다. 한편, ‘중보’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시테스’는 ‘가운데’라는 뜻의 ‘메소스’에서 파생한 말로 ‘중보자’, ‘중재자’라는 뜻이다.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서 백성들의 죄를 속하기 위한 중보자 역할을 수행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모든 백성들의 죄를 속하기 위한 구속 사역을 성취하신 분으로서 하나님과 성도들 사이에서 성도를 위해 하나님께 친히 간구하는 중보자가 되신다(7:22).

◆요약/적용

◦더 좋은 약속을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히8:6)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아멘!

여기서 ‘그러나 이제’라는 말은 앞부분의 내용을 일거에 반전시킨다.
이는 이후로 언급되는 내용은 앞의 내용과 정반대가 되는 것이다.
또 ‘더 아름다운 직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로
외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직능의 탁월성을 의미한다.
이는 그리스도가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직보다 월등하게 탁월하다는 의미다.
실제로 인류의 죄를 완전히 속량하신 그리스도의 제사장직과
인간의 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여
반복해서 속죄 제사를 드려야 했던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은
그 탁월성에 있어서 비교가 되지 못한다(7:26-28).
여기서 ‘더 좋은 약속’과 ‘더 좋은 언약’은 같은 말로
8-12절에 언급되어 있는 하나님의 ‘새 언약’을 가리킨다.
한편, ‘중보’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시테스’는 ‘중보자’, ‘중재자’라는 뜻이다.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서
백성들의 죄를 속하기 위한 중보자 역할을 수행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모든 백성들의 죄를 속하기 위한 구속 사역을 성취하신 분으로서
하나님과 성도들 사이에서 성도를 위해 하나님께 친히 간구하는 중보자가 되신다(7:22).
예수 그리스도는 ‘더 좋은 약속을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다.
오늘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주님을 찬양한다.
 [2019/12/05   

대표선교사
 ::   온전한 새 언약의 우월성!
(히8:7-13)
◆본문
7.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8.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9.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10.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11.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
12.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3.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해석과 설명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7절)
‘저 첫 언약’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과 맺었던 시내산 율법 언약을 가리킨다. 그 언약의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율법을 준행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준행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으리라는 것이었다(출19:5, 24:1-8).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여기서 ‘둘째 것’은 6절의 ‘더 조은 언약’, 즉 8절의 ‘새 언약’을 가리킨다. 저자는 본 절에서 가정법을 사용해 첫 언약이 무흠(無欠-흠이 없는)하지 않다는 것을 논하고 있다. 사실 일반 논리적인 측면에서 볼 때 A라는 것이 완벽하고 완전하다고 하면 A가 아닌 다른 대체물은 필요하지 않은 법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첫 언약이 완전한 것이었다면 하나님은 새 언약을 필요로 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셨다(8절). 이는 곧 첫 언약이 완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증거 해 준다.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8절)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하나님은 과거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책망하셨는데(렘31:31-34), 저자는 본 절 이하 12절까지에서 그 말씀을 인용하여 옛 언약을 파기시킨 장본인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었으며, 따라서 파기된 옛 언약을 대신해서 새 언약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여기서 ‘주께서 이르시되’는 언약에 관한 선지자의 말이 선지자 자신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강조해 준다. 따라서 새 언약은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지 인간이 자의로 세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편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즐겨 썼던 표현으로(렘7:32등) 장차 도래할 메시야 시대를 가리키던 말이다. 보다 정확히 말해 본 절의 ‘날’은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인해 시작된 신약 시대를 가리킨다.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여기서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은 초대 왕 사울이래 하나의 통일 왕국을 이루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은 솔로몬이 죽자 BC930년경에 두 개의 왕조로 분열되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집과 유다집이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총칭한다. 그러나 여기서 이스라엘은 온 백성이란 혈통적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을 불문하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모든 영적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하여 그를 믿는 모든 자들과 새 언약을 맺으셨기 때문이다. 한편 ‘새 언약을 맺으리라’는 말은 7절의 ‘둘째 언약’에 해당하는 것으로 새 언약은 구약 시대의 옛 언약을 대신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새 언약의 대상이 혈통적 이스라엘 민족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온 세상의 모든 백성들로 확대되었으며, 그 내용에 있어서도 임시적이고 현세적인 것에서 영원하고 내세적인 것으로 변화되었다. 여기서 ‘세우리라’는 곧 새 언약의 내용이 아직 완전히 성취되지 않았으며 최종적 실현을 향해 계속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 사실 새 언약은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셔서 구속 사역을 성취하시므로 일차적으로 성취되었다. 즉 이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대속 공로를 힘입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완전하고도 궁극적인 성취는 장차 그리스도 재림시에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고,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이 그 나라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생을 누리게 되는 때에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9절)
‘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바로의 손에서 건져 내시고 홍해를 건너게 하신 다음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그들과 언약을 체결하셨다. 한편 이 옛 언약과 새 언약이 ‘서로 같지 않다’는 이유는, 즉 옛 언약은 언약의 대상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이행으로 인해 파기되었으나 새 언약은 그처럼 파기되지 않고 영원히 존속하게 되었기 때문이다.(10절 참조)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이것이 첫 언약이 파기 되게 된 이유다. 즉 첫 언약은 그것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언약의 요구대로 율법을 성실하게 준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효력이 상실되어 결국 파기되고 만 것이다. 여기서 ‘머물러 있지 않았다’는 것은 ‘지키지 않았다’는 뜻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더 이상 그들을 돌보시지 않고 저주 아래에 내버려 두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아주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 가운데서도 구원하고자, 택하신 자들을 남겨 두셔서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사를 중단되지 않고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삼하7:16). 성경 속에서 구속사의 단절 위기는 수없이 많았다.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10절)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여기서 ‘그 날’은 8절에서 말한 장차 도래할 메시야 시대를 가리킨다. 한편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는 옛 언약과 새 언약이 가진 중대하고도 결정적인 차이다. 옛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했던 모든 구약 율법의 총론이자 도덕적 원칙을 다룬 기본법인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돌 판에 새겨 그들에게 준 것이었다(출32:15-16). 그래서 그것은 외적인 것으로 머물 수밖에 없었고, 그 외적인 것을 지키지 못한 결과는 불순종으로 말미암은 언약의 파기였다. 이에 반해 새 언약의 내용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지워지지도 지울 수도 없는 마음의 심비에 새겨져 내면화 되어 이제는 더 이상 파기할 수 없게 되었다. 새 언약이 영원한 효력을 지니게 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후3:3). 즉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리스도를 믿고 그 보혈의 공로를 힘입는 자들을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고 하나님의 백성이라 인치심으로 이전처럼 의문(儀文)의 계명에 따라 하나님께 순복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거듭난 새 심령으로 하나님께 순복하게 하시는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이것이 새 언약의 핵심 요지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리라는 약속은 이스랑레의 불순종으로 인해 완전히 깨어진 듯 보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회복되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하면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11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옛 언약에 따라 지켜야 했던 구약 율법의 기본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십계명은 돌비에 새겨진 것이었다. 때문에 이에 대하여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로써 하님에 대하여 깨달아 알며 그분의 선하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여야 했다. 이에 반해 하나님께서 주신 새 언약의 내용은 마음의 심비에 새겨진 것으로서(10절), 성도들의 심령 가운데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조명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이다. 즉 성도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중에 하나님을 알며 그분의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12절)
옛 언약과 새 언약에 있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또 하나의 차이점은 심판과 긍휼이다. 옛 언약의 경우,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면 그에 따르는 심판의 형벌이 주어졌다. 그러나 새 언약으로 불리는 복음은 그리스도를 통한 죄 용서를 약속하고 있다. 옛 언약은 인간의 죄와 연약성만을 드러내 주었을 뿐 죄에 대한 근본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 못했다. 왜냐하면 아담의 타락 이래 모든 인간은 다 부패하여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완전히 준수하여 하나님의 의를 충복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롬3:10,23). 그러나 이처럼 인간이 율법을 온전히 지켜 하나님의 의를 충복시킬 수 없음을 아시고, 하나님은 인간 대신 하나님의 의를 충족시킬 수 있는 대속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셔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심으로 인간의 죄를 속량하게 하셨다(골2:14). 따라서 이제는 누구든지 죄를 속해주신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대속 공로를 힘입기만 하면 저는 하나님의 새 언약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13절)
여기서 ‘낡아지게 하신 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게라스콘’은 ‘나이’라는 의미를 가진 명사 ‘게라스’에서 온 말로 ‘낡은 것’, ‘오래된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없어져 가는 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엥귀스 아파니스무’는 ‘소멸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곧 옛 언약은 인간의 육신이 늙고 쇠해 마침내 흙으로 돌아가듯 그 효력을 잃어 폐해지고 말았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옛 언약과 달리 새 언약은 영원한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토록 효력을 지니게 된다. 때문에 저자는 본서 수신자들에게 그 효력을 잃은 옛 언약을 붙잡지 말고, 믿는 자에게 영생을 약속하는 그리스도의 새 언약을 붙잡으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즉 저자는 율법의 행함으로써는 그 누구도 구원을 얻을 수 있고,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효력을 믿고 그 공로를 힘입음으로써만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강조함으로서, 여전히 율법의 행위로서 구원을 얻고자 했던 유대교도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또한 저들에게 미혹당하여 다시금 유대교에로 되돌아가려 한 유대인 개종자들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경계하고자 한 것이다.

◆요약/적용
◦너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히8:12)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아멘!

옛 언약과 새 언약에 있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또 하나의 차이점은 심판과 긍휼이다.
옛 언약의 경우,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면 그에 따르는 심판의 형벌이 주어졌다.
그러나 새 언약으로 불리는 복음은 그리스도를 통한 죄 용서를 약속하고 있다.
옛 언약은 인간의 죄와 연약성만을 드러내 주었을 뿐
죄에 대한 근본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 못했다.
왜냐하면 아담의 타락 이래 모든 인간은 다 부패하여
그 누구도 율법을 완전히 준수하여 하나님의 의를 충복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인간이 율법을 온전히 지켜 하나님의 의를 충복시킬 수 없음을 아시고,
하나님은 인간 대신 하나님의 의를 충족시킬 수 있는 대속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셔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심으로 인간의 죄를 속량하게 하셨다.
따라서 이제는 누구든지 죄를 속해주신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대속 공로를 힘입기만 하면
저는 하나님의 새 언약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본절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 죄를 대속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는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할렐루야!
 [2019/12/07   

대표선교사
 ::   불완전한 첫 언약의 제사!
(히9:1-10)
◆본문
1.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2.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3.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4.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5.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6.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식을 행하고
7.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8.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9.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10.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해석과 설명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1절)
여기서 ‘첫 언약’이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시내산 율법 언약을 가리킨다(8:7-9).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받은 첫 언약의 근간인 율법은 크게 도덕법(moral law)과 시민법(civil law), 의식법(ritual law)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중 제사에 관한 것은 의식법에 속해 있었다. 그리고 ‘섬기는 예법’이란 하나님께 예배 또는 제사드리는 것(롬9:4)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약 율법 중 의식법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장에 관한 규례 및 성소에 관한 제도 그리고 상세한 제사 예법을 일러 주셨다. 이 중 제사 예법은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지, 속건제 같은 것들이 있다(레1-7). 한편, ‘세상에 속한 성소’란 성막의 성소를 말하는 것으로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섬기며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제사드리던 모세의 성막(tabernacle)과 그 이후의 예루살렘 성전(temple)을 가리킨다. 여기서 ‘세상에 속한’이란 표현은 구약의 성소가 불완전하고 유한한 세계에 속해 있음을 의미한다.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안에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2절)
여기서 ‘예비한 첫 장막’은 뒤에 나오는 ‘그 안에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라는 내용으로 보아 성막 가운데 ‘성소’를 가리킨다. 그리고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은 성 소안에 놓인 성전 기구들로 성소에 들어가서 왼쪽에는 등잔대가 놓여 있었고 오른 쪽에는 진설상이 놓여 있었으며, 그 진설상 위에는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하는 12개의 진설병(떡)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본 절에는 언급이 없지만 성소에 들어가서 정면 휘장 앞에는 분향단이 놓여 있었다(4절은 저자의 기록 상 오류이거나 저자의 또 다른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임).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소의 이 모든 기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등잔대’는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 ‘떡’은 말씀되신 예수 그리스도, ‘분향단’은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을 예표한다.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3절)
여기서 ‘둘째 휘장 뒤’를 이해하려면 먼저 ‘첫째 휘장’을 알아야 하는데, 이것은 제사장이 성막 밖에서 성소를 들어갈 때 젖히는 가림막 천을 말하며, ‘둘째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가림막 천을 말한다. 따라서 ‘둘째 휘장 뒤’란 바로 ‘지성소(Holy of Holies)’를 가리킨다.
◦‘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4절)
여기서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라는 말을 그대로 해석하면 지성소에 ‘금향로와 언약궤’가 있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금향로’는 지성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소 안쪽’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이렇게 기록한 것은 단순 오류가 아니라, 1년에 한 차례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 갈 때 성소에 있던 이 금향로를 가지고 들어갔던 것을 상기하여, 금향로가 마치 지성소의 기구인 것처럼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보여 진다. 한편, ‘금으로 싼 언약궤’ 안에는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있었는데, 그 각각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즉, ‘만나’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까지 40년 광야 생활 동안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주신 양식(출16:35)으로, 하나님께서 그처럼 친히 자기 백성을 먹이시고 보호하셨음을 백성들로 하여금 기억하게 하기 위한 하나의 증거물이다. 그리고 ‘만나’는 구속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예표)’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2, 35)”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모세 당시 고라 일당이 아론의 대제사장직에 도전한 사건(민16장)가 관련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대표하는 족장들로 하여금 각기 지팡이를 취하여 증거궤 앞에 두게 하셨다가, 하나님께서 아론의 이름을 기록한 지팡이에서만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하심으로, 아론의 대제사장직의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음을 보증해 준 증거였다. 한편, ‘언약의 돌판들’이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십계명이 적인 두 돌 판을 의미한다. 이 십계명 돌 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모든 구약 율법의 총론이자 도덕적 원칙을 다룬 기본 율법이었다.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5절)
‘그 위에’에서 ‘그’란 4절에 언급된 ‘언약궤’를 말한다. 따라서 ‘그 위에’란 언약궤 위를 뜻한다. 이 언약궤를 덮고 있는 것 곧 일종의 뚜껑이 바로 ‘속죄소’다. 재료는 금이며, 형태는 직사각형이다. 이 속죄소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던 곳이었다(출25:22).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번 7월 10일 대속죄 일에 속죄제를 드릴 때, 이 속죄소에 ‘속죄의 피’를 뿌려 자신의 죄와 백성의 모든 죄를 속죄하였다(레16:14-15). ‘속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케프라트’는 ‘죄를 가리운다’, ‘화목하게 한다’는 뜻을 가진다. 그러므로 ‘속죄소’는 인간의 죄를 가리워 하나님과 인간을 화목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예표하는 것이다. 그리고 ‘덮는’은 히브리어로 ‘카타스키아존타’는 ‘가리다’, ‘그림자로 덮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속죄소 위에 놓여진 두 그룹은 그들의 날개로 속죄소를 가리웠는데(출25:18-200 이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속죄소를 보호한다는 의미를 지녔다. 한편, ‘영광의 그룹(Crerup)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수호하는 일을 주로 담당하는 천사다. 에스겔 선지자에 의하면 그 그룹들은 날개를 가진 사람, 사자, 소, 독수리의 형태를 지닌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겔1:6, 10). 그리고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는 말은 저자가 앞에서 언급한 것, 즉, 옛 언약에 속한 이런 성막 기구들은 새 언약의 모형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그것들에 관해 상세한 언급을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식을 행하고‘(6절)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여기서 ‘예비하였으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테스큐아스메논’은 ‘구성되었으니’, ‘정해졌으니’라는 뜻이다. 즉 구약 율법 중 의식법에 성소에 관한 것과 지성소에 관한 규례가 이렇게 규정되어 있다는 말이다.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식을 행하고’
여기서 ‘첫 장막’은 성막(tabernacle)안의 성소(Holy place)를 가리킨다. ‘제사장들이...들어가 섬기는 예식을 행하고’제사장들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이소에 들어가 등불을 손질하고(출27:21, 30:8, 레24:3), 분향단을 피우고(출30:7-8), 매 안식일마다 12개의 진설병을 새 것으로 진설하였다(레24:5-8).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7절)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여기서 ‘둘째 장막’은 ‘지성소(Holy of Holies)’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속죄소(5절)가 있는 지성소에는 이처럼 일반 제사장들은 들어갈 수 없고 오직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번 대속죄일(7월 10일)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것은 곧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신의 몸을 희생 제물 삼아 하나님께 인간의 죄를 속하는 속죄 제사를 드림으로 단번에 지성소에 들어간 것을 예표 한다.
☀참고:대속죄일
대 속죄일은 레위기 23장 27절에서 “일곱째 달 열흘날(성력 7월 10일)은 속죄일이니 너희는 성회를 열고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는 날”로 기록된 날로, 모든 유대인들이 25시간 동안 금식하며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시간이다. 이날만큼은 세속적인 유대인들조차 회당에 가고, 금식을 한다.
성경에서는 티쉬레이 달 첫째 날(성력 7월 1일), 나팔절에 나팔을 불어 회개를 촉구한다. 열흘째 날인 대속죄일성력 7월 10일)에는 대제사장이 먼저 자신과 가족을 위하여 속죄해야 하는데 그 절차는 다음과 같다.(레16:11-14)
①자기와 가족을 위하여 속죄(번제물에 안수)하고 그 속죄제 수송아지를 잡는다.(11)
②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 앞 제단 위에서 피운 불을 그것에 채운다.(12)
③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두 손에 채워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간다.(12)
④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린다.(13)
⑤수송아지의 피를 가져다가 손가락으로 속죄소 동쪽에 뿌리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린다.(14).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는 염소 두 마리를 데려다가 제비 뽑아 한 마리는 속죄제 염소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나서, 다른 한 마리(아사셀 염소)는 광야로 떠나보낸다. 대제사장이 속죄 염소를 가지고 백성을 위한 속죄 과정과 ’아사셀 염소‘를 광야로 보내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레16:15-22)
①대제사장은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휘장 안(지성소)에 들어가서 전과 같은 방법으로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린다.(15)
②대제사장은 제단으로 나와서 속죄할지니 곧 그 수송아지의 피(대제사장 속죄제물)와 염소의 피(백성을 위한 속죄제물)를 가져다가 제단(번제단) 귀퉁이 뿔들에 바른다.(18)
③또 손가락으로 그 피(수송아지의 피와 염소의 피)를 그 위에 일곱 번 뿌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 제단을 성결하게 한다.(19)
④지성소와 회막과 제단을 위하여 속죄하기를 마친 후에 살아 있는 염소를 드린다.(20)
⑤대제사장은 그의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내되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접근하기 어려운 땅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는다.(21-22)
구전으로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용서하시면 대제사장이 살아서 지성소를 나올 것이고, 용서치 않으실 때는 대제사장이 지성소로 들어가는 즉시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대제사장 옷 술에 석류 모양의 작은 종들을 달고 발목에 끈을 묶고 지성소에 들어갔다고 전한다. 지성소에 들어가 있을 때 방울 소리가 나면 대제사장이 죽음을 면한 것이고, 방울 소리가 멈추면 발목에 묶여 있던 끈을 당겨 대제사장의 시체를 꺼냈다고 한다.
한편, 2차 성전이 무너진 후(AD 70년) 전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은 제사를 통해 자신과 민족의 죄를 회개할 수 없게 되자, 정통유대인들은 검정색 복장을 하고 제사 대신 기도와 랍비의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의 확신 없이 하나님의 긍휼만을 바라보는 생활을 하고 있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율법을 지키며, 제사 대신에 기도를 하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이날은 이스라엘 전체가 멈추는 풍경이 연출된다고 한다. 모든 도로가 폐쇄되고, 거리에는 자동차 대신에 어린이들이 고속도로에서 자전거를 탄다. 공항까지 문을 닫는다.
성력으로 매년 7월 1일! 나팔을 불어(나팔절)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날부터 서로에게 용서를 구하고 용서하는 시간을 가지며 대속죄일을 준비한다. 유대인들은 대속죄일이 심판의 날이라고 믿는다. 자신의 일 년 동안의 행실에 따라 하나님의 생명책에 이름이 적히는 날이라고 믿고 있다. 정통유대인들은 대속죄일 전 10일 동안 집중적으로 ‘슬리홋(회개) 기도회’를 하는데, 매일 밤 자정 ‘통곡의 벽’에 1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몰린다. 그리고 어떤 정통유대교단은 닭을 사람들의 머리 위로 돌리는데, 이것은 그들의 죄를 닭에게 옮기고 대속죄일에 그 닭을 잡음으로써 동물의 피를 통해 구원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그만큼 죄를 회개하기 위해서는 ‘피의 제사’가 중요하다. 회개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도록 최선을 다한 후에는 죄사함을 의미하는 하얀색 옷을 입는다.(참고자료:KRM 웹사이트)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피’는 생명의 원천이다(레17:11). 그리고 죄는 생명의 소멸, 곧 사망이다(롬6:23). 따라서 생명을 상징하는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을 얻을 수가 없다(22절). 이런 이유에서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짐승의 피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가 속죄제를 드렸다. 그러나 짐승의 피는 인간의 죄를 근본적으로 속량하지 못한다. 인간의 근본적인 죄 문제를 해결 해 주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속죄 제물이 되셨으며,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에 달려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는 그냥 한 인간의 피가 아니라 우리의 죄를 속량하신 ‘보혈’이다.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8절)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여기서 ‘보이신’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델룬토스’로 ‘분명하게 하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로써’는 지금까지 살펴 본 성소와 지성소에 관한 율법의 규례를 가리킨다. 따라서 본 절은 ‘성령께서 성막 제도에 관해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란 말로 풀이 할 수 있다. 즉 저자는 성막제도의 의미를 분명히 깨닫게 해주시는 분은 성도들의 심령 가운데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이심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고전2:10-11).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여시서 ‘첫 장막’은 성소(Holy place)를 ‘성소’는 ‘지성소(Holy of Holies)’를 가리키는 말이다. 저자는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휘장이 처져 있어 지성소가 일반 백성들은 물론, 제사장들에게도 개방되지 않았던 사실을 들어, 그 제한적이고 불완전한 성격을 증거하고 있다. 실제로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은 그리스도께서 대속 죽음을 당하시기까지 그대로 드리워져 있어 모든 사람들이 지성소로 나가는 길이 가로 막혔었다. 그러나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그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짐으로써(마27:51) 열리게 되었다.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9절)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여기서 ‘이 장막’은 8절에 언급된 장막, 곧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으로 인해 지성소로 가는 길이 차단된 구약의 성막을 가리킨다. 또 ‘현재까지의 비유’는 원어로 ‘이 때를 위한’이란 말이며, ‘이 때’란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전개된 신약 시대를 가리킨다.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의 모형에 지나지 않는 구약 제사는 사람들의 양심에 온전한 만족을 주지 못했다는 의미다. 이는 짐승의 피로써 드렸던 속죄 제사가 인간의 죄 문제를 단번에 완전히 해결해 주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죄인 간의 전인적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 못했음을 의미한다. 이에 하나님과 죄인간의 전인적 관계를 회복시켜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10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이는 곧 음식의정하고 부정함에 대한 규례 및 정결례에 관한 규례를 가리킨다. 율법 중 의식법은 제사 제도 및 ‘먹는 것’(레11:1-23), ‘마시는 것’(레10:8-9), 그리고 씻는 것‘(레11:24-40, 16:24-28)등에 관해 규정해 놓은 법규다. ’육체의 예법‘이란 ’외적, 형식적 예법‘이란 말이다.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이는 곧 성막(tabernacle)에 관한 규례 및 먹고 마시는 것과 정결례에 관한 규례 등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진 새 언약(복음)으로 대체 될 때까지만 그 효력을 발휘하는 불완전하고 임시적인 것이었음을 의미한다.

◆요약/적용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히9:9)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아멘!

여기서 ‘이 장막’은 8절에 언급된 장막, 곧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으로 인해 지성소로 가는 길이 차단된 구약의 성막(tabernacle)을 가리킨다.
또 ‘현재까지의 비유’는 원어로 ‘이 때를 위한’이란 말이며,
‘이 때’란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전개된 신약 시대를 가리킨다.
구약 제사는 짐승의 피로써 드렸던 속죄 제사가
인간의 죄 문제를 단번에 완전히 해결해 주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죄인 간의 전인적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 못했음을 의미한다.
이에 하나님과 죄인간의 전인적 관계를 회복시켜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따라서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진 새 언약(복음)으로 대체 될 때까지만
그 효력을 발휘하는 불완전하고 임시적인 것이었음을 의미한다.
 [2019/12/09   

대표선교사
 ::   완전한 새 언약의 제사!
(히9:11-22)
◆본문
11.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3.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15.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6.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17.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유효한즉 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느니라
18.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19.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두루마리와 온 백성에게 뿌리며
20.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21.또한 이와 같이 피를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22.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해석과 설명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11절)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원문에는 본 절 앞에 ‘그러나’가 있다. 이는 본 절부터 다루는 내용이 옛 제사에 관한 것에서 완전히 전환하여 새 제사에 관한 것으로 넘어감을 뜻한다. ‘장래 좋은 일’은 인간의 죄를 속하기 위해 구속 사역을 성취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를 믿고 구속 공로를 힘입는 자들이 얻게 되는 죄 씻음과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되는 축복을 의미한다. 이것들은 구약 율법의 규정에 따라 하나님께 드린 제사가 사람들에게 제공해 주지 못한 것들이다. 한편, ‘대제사장으로 오사’는 두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하나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심으로 우리가 구속의 은총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 오심으로 이전의 레위 지차 아론 계통의 제사장직은 폐하여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여기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휘장이 찢어진 것을 들어 그리스도의 육체로 이해하기도하나 보다 본질적인 의미는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성취하신 후 승천하셔서 자신의 구속 사역에 근거해 중보사역을 행하고 계시는 하늘 성소(12, 24잘)로 이해하는 것이 합당하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12절)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이것이 구약의 대제사장들과 그리스도와의 명백한 차이점이다.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염소와 송아지를 희생 제물로 삼아 그 피로 제사를 드렸지만(레16:11),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자신의 육신을 희생 제물로 삼아 그 피를 뿌려 속죄 제사를 드리셨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오직’이라는 단어다. 이는 인간의 죄를 온전히 속량할 수 있는 유일한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뿐이라는 사실이다.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여기서 ‘영원한’이라는 의미와 ‘단번에’라는 의미는 일맥상통한다. 그리스도는 구약의 대제사장들이 매년 제사를 드린 것(7절)과 달리 단한번의 제사로 인간의 모든 죄를 속하는 대속 사역을 성취하셨다. 그리고 단 한 번의 제사는 완전한 효력을 지니기 때문에 또 다른 제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단 한 번의 제사와 효력이 영원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에서 ‘성소’는 하늘 성소, 즉 그리스도께서 대속 죽음을 당하신 후 부활 승천하셔서 현재 계시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을 가리킨다(24절).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13절)
‘염소와 황소의 피’는 구약 율법에서 인간의 죄ㅐ를 속하기 위한 제사를 드릴 때 사용된 것이며(12절), ‘암송아지의 재’는 의식법상 부정한 자를 깨끗하게 하는 정결례를 행할 때 사용된 것이었다(민19:1-22). 이와 같이 하나님의 지으신 피조물인 짐승도 의식범상 사람을 깨끗하게 하는 제물로 사용되었는데 근본하나님 자신이신 그리스도께서 친히 흘린 피가 어찌 인간의 죄를 속량하지 못하겠느냐는 그 요지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14절)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여기서 ‘영원하신 성령’이란 그리스도께서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에서 기꺼이 희생 제물이 되셨음으로, 그리스도 자신의 신성을 좇아 속죄 사역을 성취하신 것을 의미한다. 또 ‘흠 없는 자기’란 구약 제사에서는 반드시 흠이 없는 제물이어야 했던 것을 상기시킨 것으로, 이는 그리스도의 무흠성을 예표하는 것이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으로 성육신 하셨지만 근본 죄가 없으신 무흠하고 완전무결한 분이셨다(4:15).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여기서 ‘양심’이란 9절에서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의 모형에 지나지 않는 구약 제사는 사람들의 양심에 온전한 만족을 주지 못했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죽은 행실’이란 물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전적으로 모순된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물리적인 관점에서 사용된 표현이 아니다. 인간이 비록 육체적으로는 살아있어 물리적인 행동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죄악 된 행동인 경우 그의 결국은 영원한 사망이다(롬6:21,23). ‘짐승의 피’나 ‘재’는 일시적, 외형적으로 인간의 죄와 부정을 깨끗하게 해주는 의미를 지닌 것이었을 뿐 근본적으로 인간의 죄를 완전히 단번에 사해주지도, 인간의 부패한 심성을 변하시키지도 못했다. 이에 반해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인간의 죄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주셨음으로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죄 사함 받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칭함 받게 된다는 사실을 반어법으로 질문함으로써 더욱 확실하게 강조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15절)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아론과 그의 뒤를 잇는 대제사장들은 불완전한 옛 언약의 중보자들이었으나 그리스도는 완전하고 영원한 새 언약(8:8-12)의 중보자이시라는 말이다.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이 말은 좁게는 구약 시대 때에 옛 언약(8:7)아래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지은 지를 가리키지만, 넓게는 동서고금이 어느 인간을 막론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르셔 지은 모든 죄를 가리킨다. 즉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속량하여 그들만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죄를 속량하시되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죽으신 것이다.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부르심을 입은 자’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율법을 거슬려 범죄한 인간의 죄를 속죄하시기 위해 구속사역을 성취하셨다 하더라도 모든 인간이 다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구원을 얻기 휘해서는 그리스도가 자기 죄를 속량하기 위해 대속 죽음을 당하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는 조건을 두셨다. 따라서 ‘부르심을 입은 자’란 하나님의 택하신 영적 자녀들을 뜻함을 알 수 있다. 한편, ‘영원한 기업의 약속’이란 성도들이 장차 그리스도 재림시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영원히 죽지 않고 그리스도와 함께 안식을 누리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가리킨다.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유효한즉
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느니라‘(16-17절)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여기서 ‘유언(헬, 디아데케)’는 ‘계약(15절)’과 ‘유언’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이 말은 ‘계약’ 또는 ‘약속’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나 여기서는 ‘유언’으로 사용되었다. 왜냐하면 본 절에서 ‘죽음’이라는 개념이 뒤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새 언약(15절,8:8-12)과 그리스도의 대속 죽음과의 상관관계다. 즉 저자는 양자를 서로 연결시켜 그리스도가 죽어야 하나님의 언약이 그 효력을 발휘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새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 대속 죽음을 당하셨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그 언약은 유언이 되었고 그 유언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유효한즉 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느니라’
본 절의 원문에는 앞에 ‘왜냐하면(헬, 가르)’가 나와 있다. 이는 곧 본 절이 앞 절의 반복이면서도 그 이유를 설명하는 구절이다.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18절)
본 절에서 저자는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돌아가심으로 하나님의 새 언약이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듯이, 과거 구약 시대의 옛 언약 역시 짐승의 피를 흘림으로 그 효력을 발휘했었다(19-22절)는 동일한 원리를 밝힌 것이다. 그러나 짐승의 피는 인간의 죄 문제를 완전히 단번에 해결해 주지 못한 것인 반면, 그리스도의 피는 완전하고도 영원한 해결을 가져온 것이라는 근본 차이가 있다.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두루마리와 온 백성에게 뿌리며‘(19절)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그 두루마리와 온 백성에게 뿌리며’
본 절에서 저자는 구약 시대의 옛 언약이 어떻게 체결되었는지를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본 절은 옛 언약 역시 결국 피 뿌림으로 확립된 것임을 보여준다. 즉 언약 체결을 위해 먼저 언약의 내용을 백성들에게 들려주고 백성들이 수락하면 그 내용을 책에 기록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책과 언약 체결의 당사자 간인 백성들에게 피를 뿌려 언약이 체결되었음을 학정하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송아지와 염소(제물들)의 피’를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두루마리와 온 백성에게 뿌린다’고 했는데 이에 관한 성경기록은 없어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지만 성결을 위한 의식이었음은 분명하다.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20절)
여기서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란 출24:8을 인용한 것이다. 과거 시내산 율법 언약 체결당시 구약 율법이 기록된 서책과 백성에게 뿌려진 짐승의 피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명하신 옛 언약을 확증하는 피였다. 그런데 주님은 최후의 만찬자리에서 자신의 피를 상징한 포도주를 가리켜 역시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다(마26:28). 이로써 구약의 피와 그리스도이 피는 정확하게 연결 된다. 즉 옛 언약의 효력 발휘를 위해 뿌려진 짐승의 피는 하나님의 새 언약의 효력을 발휘하게 한 그리스도의 보혈을 예표하는 것이었다.
◦‘또한 이와 같이 피를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21절)
여기서 의문이 가는 것은 구약 성경 어디에도 성막과 기 기구들에 기름을 발랐다는 기록은 있지만(출40:9), 피를 뿌렸다는 기록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짐승의 피를 취하여 아론 계통의 제사장들이 몸과 옷에 바르고 뿌렸다는 기록(레8:22-24, 30)에 비추어 성막과 성막 기두에도 피를 뿌렸을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성막과 성막 기구에 피를 부렸다는 언급은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서도 발견된다.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22절)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구약 율법 중 의식법에는 누가 무슨 죄를 지었으며 어떠한 부정을 입었는지에 따라 어떠한 짐승을 잡아 피 뿌림으로 속죄 제사와 정결 예식을 행하여야 하는지를 상세히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구체적인 규정을 담고 있는 지침서가 바로 레위기다. 한편,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된다’에서 ‘거의’는 ‘예외가 있다’는 말이다. 그 ‘예외’라는 것은 물로서 정결하게 하는 의식법을 말한다(민31:23). 또 가난한 사람의 경우에는 곡물을 제물로 삼아 제사를 드릴 수도 있었다(레5:11-13).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그러나 이런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속죄의 본질은 ‘피로써’ 드리는 제사였다. 즉 누군가 속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물의 피가 요구되었고, 누군가를 대신해서 피 흘려 죽어야만 죄 사함의 효력이 있었다. 다시 말해서 옛 언약에서는 짐승이 피를 대신 흘려 속죄하였고 새 언약아래에서는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 십자가상에서 피 흘려 죽으신 것이다.

◆요약/적용
◦단번에 영원한 속죄!(히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아멘!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염소와 송아지를 희생 제물로 삼아 그 피로 제사를 드렸지만(레16:11),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자신의 육신을 희생 제물로 삼아
그 피를 뿌려 속죄 제사를 드리셨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오직’이라는 단어다.
이는 인간의 죄를 온전히 속량할 수 있는 유일한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영원한’이라는 의미와 ‘단번에’라는 의미는 일맥상통한다.
그리스도는 구약의 대제사장들이 매년 제사를 드린 것(7절)과 달리
단 한번의 제사로 인간의 모든 죄를 속하는 대속 사역을 성취하셨다.
이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단 한 번의 제사와 효력이 영원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언의 효력!(히9:16-17)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유효한즉
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느니라“ 아멘!
여기서 ‘유언(헬, 디아데케)’는 ‘계약(15절)’과 ‘유언’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이 말은 ‘계약’ 또는 ‘약속’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나
여기서는 ‘유언’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본 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새 언약(15절,8:8-12)과
그리스도의 대속 죽음과의 상관관계를 말한다.
즉 저자는 양자를 서로 연결시켜 그리스도가 죽어야
하나님의 언약이 그 효력을 발휘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그 언약은 유언이 되었고
그 유언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효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살게’ 되었음을 잊지 말자!

◦피 흘림이 없으면 죄사함이 없다!(히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아멘!
구약 율법 중 의식법에는 누가 무슨 죄를 지었으며
어떠한 부정을 입었는지에 따라 어떠한 짐승을 잡아
피 뿌림으로 속지 제사와 정결 예식을 행하여야 하는지를 상세히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구체적인 규정을 담고 있는 지침서가 바로 레위기다.
한편,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된다’에서 ‘거의’는 ‘예외가 있다’는 말이다.
그 ‘예외’라는 것은 물로서 정결하게 하는 의식법을 말한다(민31:23).
또 가난한 사람의 경우에는 곡물을 제물로 삼아 제사를 드릴 수도 있었다(레5:11-13).
그러나 이런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속죄의 본질은 ‘피로써’ 드리는 제사였다.
즉 누군가 속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물의 피가 요구되었고,
누군가를 대신해서 피 흘려 죽어야만 죄 사함의 효력이 있었다.
다시 말해서 옛 언약에서는 짐승이 피를 대신 흘려 속죄하였고
새 언약아래에서는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
십자가상에서 피 흘려 죽으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그냥 피가 아니다.
그것은 ‘보혈(보배로운 피)’이다.
 [2019/12/12   
이전 글
   ☀2019겨울 말씀사경회 계획! [1]

대표선교사  
2019/12/05 
다음 글
   ☀<사역>11-12월 사역 일정!

대표선교사  
2019/12/05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mne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