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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대표선교사 (2019-12-11 22:02:04, Hit : 104, Vote : 6)
제        목  
   말씀 사경회의 유익과 영성!(딤후3:15-17)
말씀 사경회의 유익과 영성!
(딤후3:15-17)

◆본문
15.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서론
1943년 5월 17일! 손양원목사가 옥중 생활을 한 지 3년 째 되는 해 출소를 얼마 남기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당시 손 목사 사건을 담당했던 일본 검사는 손 목사가 다시는 신사 참배를 반대하는 일에 앞장서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손 목사의 마음을 바꾸려고 "덴꼬(轉向-전향=배교)하면 내보내 준다."고 협박을 했습니다.
그러나 손 목사는 "검사님에게는 덴꼬가 문제이지만 나는 '신꼬(信仰)'가 문제이외다. 나는 집에 가도 예수와 함께 살 것이요. 구금소 가도 예수와 함께 살 것이오. 예수와 함께 살 바에야 아무데인들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손 목사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그의 전부였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의 설교에서 평소 손 목사가 얼마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했는가에 대한 결단이 잘 나타납니다.
"주의 뜻이 아니면 천만금이 생겨도 거절해야 할 것이요, 주의 뜻이면 물불을 헤아리지 말아야 한다. 오 주여! 나의 뜻, 나의 계획, 나의 생각은 다 깨치시고 당신의 뜻, 계획, 생각만 성취되게 하소서.“
손 목사는 자신의 삶을 한 마디로 "여주 동거(與主同居)" 즉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주님과 함께 동행하면서도 하나님께만 절대 순종, 죽고 또 죽어도 하나님 중심으로만 살겠다는 결단입니다. 그러면 손목사의 이 믿음과 신앙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한 마디로 성경 말씀입니다.
그는 로마서 2:17-29, 빌립보서1:27을 본문으로 ‘성경대로 살자’는 제목으로 설교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독교인이란 어떤 사람인가? 한마디의 말로 답하면 66권 신구약 성경대로 살려는 자입니다. 불교인은 불경대로 유교인은 삼강오륜대로 회교이은 코란대로 자기네들이 경문을 좇아 살려는 자일 것입니다. 성경의 교훈과 신앙생활은 양궤도와 같습니다. 성경의 명령한 바를 행하고 금하는 바를 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하나님께서 ‘하라’ ‘하지 말라’고 명령할 수 있으며 우리는 순종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순종의 종교입니다. 순종하려면 그 대상자에게 권위가 있고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순종하기 전에 그 권위를 알아야 합니다.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한 법칙이니라’하였습니다. 성경을 의심하는 자는 순종하지 못합니다. 나는 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생명을 걸고 증거합니다. 누가 성경을 의심하면 나는 그와 상종하기고 싫습니다.
성경속에 예수님이 계시고 신자 속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여기 주머니가 있는데 콩을 넣으면 부슨 주머니라고 하는가? 콩 주머니라고 합니다. 쌀을 넣으면 쌀주머니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말은 안디옥에서 비로소 사용하였는데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한 자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옥토에 뿌린 씨와 같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가 맺어야 합니다(막4:8). 보리를 아무리 가꾸어도 벼가 되지 못하고, 개를 아무리 길들여도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중생치 않고는 아무리 해도 죄악의 자식입니다.
저는 최근 손양원목사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제가 느낀 것은 손양원 목사야말로 살아있는 성경 그 자체구나 생각했습니다. 마치 손목사는 사도행전에서 방금 튀어 나온 분 같았습니다. 그를 변화 시킨 것은 하나님입니다. 그 중심에는 성경이 있습니다. 그래서 매년 우리 수원지구 겨울 수련회는 말씀사경회를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3주 만 지나면 사경회입니다. 기말고사로 분주할 시간입니다. 언젠가 슬기자매가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시험기간에도 밥은 먹듯이 채플도 당연히 참석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비록 시험기간이라도 말씀 사경회를 사모하는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본론

그러면 <말씀 사경회의 유익과 영성>은 무엇일까요?
▶첫째, ‘말씀’이 변화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변화의 시작이란 말은 무엇일까요? 요한복음1장 1-3절과 1:14절을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씀'은 헬라어로 '로고스'라고 합니다. 로고스(말씀)는 원래 성경의 언어가 아닙니다. 로고스는 헬라철학 즉 스토아철학자의 언어입니다. 여러분! 좀 어렵지요? 사도요한은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는 데 적합한 언어를 당시 헬라철학에서 최고 가치인 '로고스'를 차입해서 사용한 것입니다. ‘말씀(로고스=Word)’은 예수며, ‘예수’는 ‘로고스다’라고 인식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에서 바울은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즉 성경이 하나님께서 죄인 된 인간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기록되어 있으므로, 성경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진정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지혜가 담긴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거듭남(born again)’ 또는 ‘중생’이라고 합니다. ‘거듭남’이야 말로 인생의 최고 최대의 변화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그렇습니다. 우리는 죄에서 자유하게 되었고, 영생을 얻었으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들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또 ‘말씀’이 변화의 시작이란 말은 어떤 뜻일까요? 그것은 말씀은 거듭난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 뜻대로 순종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손양원 목사는 예수 믿고 확실하게 변화된 대표적인 분입니다. 그는 "성경대로 살자"는 설교에서 너는 성경대로 살 수 있느냐라고 물으면 나는 할 수 있다“고 대답하겠다고 합니다. 그는 ‘중생한 자라야 성경 말씀을 지킬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중생자는 성령의 감동에 의하여 성경 말씀대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손 목사는 중생한 자로서 성령 충만한 자라야 말씀대로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성경대로 살려면 우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의심하지 않아야 한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 말씀은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능력과 성도를 성도답게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그러면 ‘말씀’은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15절 말씀을 제가 다시 읽겠습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여기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으로서 기독교 신앙교육의 바탕이 됨을 보여줍니다. 물론 바울 당시는 아직 신구약 성경이 모두 완성되지 않은 때이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성경은 구약성경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당시에도 이미 기록된 완성된 몇 몇 신약성경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교훈‘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사람들을 바른 신앙으로 올바로 가르치고 이끄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niv 성경은 이를 ‘가르침(teaching)’으로 번역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이 말씀 사경회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기도 합니다. 이어서 나오는 ‘책망’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꾸짖음을 가리키는 말로,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대로 합당하게 행동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돌이키도록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도 하나님이 책망을 받지 않았다면 ‘완벽한 사람’이거나, 분명 성경을 ‘잘못 읽은 사람’일 것입니다. 또 ‘바르게 함’이란 책망의 목적에 해당 되는 말로써 허물을 교도(敎導-가르치고 이끔)하고자 하는 측면을 강조한 말입니다. 또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는 말에서 ‘의’란 ‘복음의 진리’를 말하며, 교육은 ‘훈련(training)-niv’의 측면을 더 강조하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고 들은 바를 행할 수 있도록 지도하기에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한편, ‘온전하게 하다’라는 말은 어떤 임무에 적합한 상태로 훈련되어진 것을 가리키는 말로 성경을 통해 철저하게 훈련된 사람만이 모든 선한 일을 하는 하는데 있어서 적합하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2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죄인이 의인이 되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구원 받은 우리가 참된 성도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힘이고 능력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 사경회가 중요한 것입니다. 말씀 사경회를 사모함으로 기대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말씀 사경회의 유익과 영성>은 무엇일까요?
▶둘째, ‘말씀’이 부흥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2017대학생 의식조사 결과를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이 조사에서 기독대학생들은 1주일간 성경읽기와 개인기도에 사용한 시간은 합쳐서 1시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1주일 동안 성경을 읽은 시간은 평균 24분에 그쳤는데, 이는 2012년(64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1주일간 기도한 시간 역시 2012년(59분)의 절반 수준인 31분이었습니다. 아예 성경을 읽지 않거나(63.7%) 기도를 하지 않는 비율(38.3%)도 5년 전 조사보다 높게 나타났습니다.  또한, 기독대학생 35.1%만 성경 전적으로 믿고 있었다는 결과는 정말 충격적입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아무 의미 없는 교회 출석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말씀사경회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말씀 사경회의 유익 중 하나는 오직 말씀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과 집중적으로 한 권(이상)의 성경을 마스터 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금년 말씀사경회는 야고보서를 강해할 것입니다. 수 십년 동안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녀도 성경 통독 한번 안하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안타까움을 넘어 매우 슬픈 일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좋은 뷔페를 먹어도 한 두 끼가 지나면 배가 고픈 법입니다. 사람이 배가 고프면 밥을 먹게 되고, 당이 떨어지면 당분을 먹고, 단백질이 부족하면 고기를 먹습니다. 그런데 왜 ‘영양실조’에는 그렇게 신경 쓰면서 ‘영적 실조’에 걸려 죽을 지경인데도 아무런 치료나 처방을 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영적으로 교만하거나, 악하기 때문입니다.
‘사경회(査經會)란? 직역하면 ‘성경을 조사한다’는 뜻으로 영어의 ‘Bible study’와 같습니다. 교회 용어사전에는 “연례적으로 특별강사를 초빙하여 교인들에게 요청되는 기본적인 신앙 교육을 실시하고 수일간에 걸쳐 성경공부를 하며 은혜 받는 집회 또는 특별기도회를 말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민족 교회는 선배들의 이 사경회 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러면 초대교회의 사경회 모습은 어땠을까요? 한국교회사에 나오는 한 장면을 소개하겠습니다.
<1901년 평양에서 열린 여자 사경회에는 1백50리에서 3백리 이상 떨어진 삭주 창성 의주 지역에서도 몇 주일 동안 먹을 쌀과 옷을 짊어지고 왔다. 다음해에 평양에서 열린 사경회에는 4백명 가량이 모였는데, 이들 지역뿐 아니라 황해도와 서울, 전라도 목포 무안에서도 올라왔다. 특히 네비우스 선교 정책의 '자립' 정신에 따라 참석자들이 경비를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었기 때문에, 멀리서 사경회에 참석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곽안련 선교사는 1910년 자기가 인도한 사경회에 참석하기 위해 왕복 여행비와 체류 비용을 부담하면서 강원도 동해안에서 200마일(리로 환산해라)을 걸어온 14명을 소개했다. 그는 먼 거리에서 오는 교인들의 경우 쌀자루나 땔감을 지거나 이고 참석하는 이들도 있다고 증언했다. 말씀을 연구하고 강연과 설교를 들으면서 감동을 받은 이들은 과거 자기가 도둑질한 물건이나 돈을 돌려주고, 교회 안팎에서 범한 죄악을 토로하며 용서를 구했다.>
여러분! 이것이 초대교회의 사경회였습니다.
성경에도 여러군데 사경회 모습이 등장합니다. 그 중 느혜미야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도 예루살렘 광장에 모여 말씀 사경회를 했습니다. 느헤미야 9:3 “이 날에 낮 사분의 일은 그 제자리에 서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의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낮 1/4을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데 전념했다고 합니다. 바로 앞장 즉 느헤미야8장 3, 6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3.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6.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
‘새벽부터 정오까지(오전 내내)’ 하나님이 말씀을 읽었다는 것과 6절-모든 백성이 ‘아멘’ ‘아멘’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8장 8-9절을 보면,
<8.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9.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백성들이 울었습니다. 이 금식사경회는 일주일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부흥’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부흥(revival)’이라 말의 뜻은 ‘다시 살아나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이 부흥의 예가 가장 잘 나타난 곳이 바로  누가복음 15장 ‘돌아온 탕자 비유’입니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눅15:24)”
이것이 바로 ‘부흥’입니다.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고, 죽었던 공동체가 성령의 능력으로 활력을 되찾는 것이 부흥입니다. 구약에는 겔37장의 ‘마른 뼈가 살아난 사건’이 부흥이었고, 신약에는 ‘오순절 사건’이 바로 부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행12:24)”
그렇습니다. 부흥은 곧 말씀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번 말씀 사경회가 저와 여러분에게 ‘그 부흥의 시작’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말씀 사경회의 유익과 영성>은 무엇일까요?
▶셋째, 말씀이 영적 무장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이런 기사가 포털사이트에 올라왔습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20대 청년 74% "그렇지 않다"
"꼭 결혼하겠다"…남자 26.4%, 여자 11%
"출산 의향 없다"…남자 42.6%, 여자 71.2%>
<20대 청년 세대 10명 중 7명 이상이 우리 사회가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등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4일 인구보건복지협회가 20대 청년 1천명(남녀 각 500명)을 대상으로 연애·결혼, 자녀· 가족, 사회·행복에 대한 견해를 온라인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현재 사회에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격언이 통용되는지에 대해 74.0%가 "그렇지 않다"고 부정적으로 답했다.>(연합뉴스 기사 발췌)
요즘 세상이 어려워 예상은 했지만 너무 충격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인생을 광야의 삶에 비유합니다. 성도의 삶도 마찬가지 광야의 삶입니다.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한마디로 척박한 광활한 땅입니다. 광야에는 승냥이와 이리, 전갈과 독충 등이 서식하는 사람이 생존하기에 불가능한 땅입니다. 성도들도 마찬 가지로 이 광야를 걸어가야 합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광야는 신앙 훈련의 장소이며, 시험의 장소입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훈련을 받았고, 예수님께서도 광야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10:16)'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광야는 ‘사단의 시험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보호'의 장소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광야를 어떻게 살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예를 역시 손양원 목사님에게서 찾습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어떤 사람은 평화의 시대에 태어나 평화의 시대를 살다가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전쟁시에 태어나 평생 전쟁만 하다가 죽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평생 광야의 삶을 살다가 죽기도 합니다. 손양원목사님은 일제 시대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옥고를 치르다가 순교했습니다. 뿐만아니라 사랑하는 두 아들이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살해되었으며, 그 아들을 살해한 살인자를 양자로 삼은 분입니다. 어쩌면 그분은 가장 혹독한 광야를 살다가 하나님 품으로 돌아간 분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손목사님은 그 혹독한 광야에서 어떻게 살았을까요?
손 목사의 ‘말씀 중심의 삶’은 그가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살리는 과정에서 잘 나타납니다. 다음은 손목사님과 딸 손동희와 대화입니다.
<"동희야, 내 말을 잘 들어 봐라. 내가 무엇 때문에 5년 동안이나 너희들을 고생시켜 가면서 감옥 생활을 견며 냈겠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었겠느냐. 그런데 그 학생이 안잡혔다면 또 모르되 일단 잡힌 이상 모른척 할 수가 없구나.제1 계명과 제2 계명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도 똑같은 하나님의 명령인데 내 어찌 그 명령은 순종하면서 이 명령은 순종치 않는단 말이냐. 그보다 더 큰 모순이 어디 있겠느냐?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순종치 않았다면 과거 5년간의 감옥살이가 모두 헛수고요, 너희들 고생시킨 것도 헛고생만 시킨꼴이 되고 만다. 내가 여기까지 와서 넘어질 수 없다. 그를 살리고 그 영혼을 구한다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뿐 아니라 한인간의 타락한 영혼을 구제해 준 보람도 느낄 수 있지 않느냐? 두 오빠는 천국 갔으나 두 오빠를 죽인 자는 지옥 갈 것이 분명 한데 내 전도하는 자로서 지옥으로 가는 그를 보고만 있으란 말 이냐?">
손목사님은 두 아들을 살해한 그를 살려서 양아들로 삼아야 하는 이유를 딸에게 이렇게 설명했다고 합니다ㅣ.
<"동희야, 성경 말씀을 자세히 보아라. 성경 말씀에는 분명히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였다. 용서만 가지고는 안 된다. 즉, 그 학생을 살려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원수를 사랑하라 했으니 사랑하기 위해서 아들을 삼으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백세에 얻은 외아들 이삭을 하나님의 명령 한 마디에 모리아 제단에서 칼로 찌르려 하지 않았더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시험이 그 시험보다 더 힘들다고 생각하느냐?">
저는 이 글을 읽으며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저는 손양원목사님이 이 희망이 없어 보이는 세상을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손목사님의 책을 쓴 분은 손목사님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는 말씀에 살고, 말씀에 죽은, 말씀의 종이다. 그의 생각과 삶이 그가 말한 대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이 살벌한 광야에서 승리하는 길은 ‘오직 말씀으로 무장’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엡6장에서 ‘전신 갑주(갑옷)’를 취하고 영적으로 ‘완전 무장’하라고 했습니다.
<13.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그런즉...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이번 사경회는 우리가 평생 광야의 영적 전투에서 필요한 말씀을 무장하는 아주 중요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앞으로 2주 후면 말씀 사경회가 열립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는 2020년 새해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고, 새로운 달력이 넘어간다고 해서 어찌 그것이 새해이겠습니까?
이제 기말고사로 분주할 시간입니다.
비록 시험기간 중이지만 말씀 사경회를 간절히 사모하는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제가 사경회 등록하는 작은 일로 신경 쓰지 않도록 하기 바랍니다.
이 번 사경회만큼은 수원지구 지체 전원 참석을 주님의 이름으로 엄히 명합니다.

그리고 이번 말씀 사경회를 통해
여러분의 인생에 놀라운 ‘변화’가 시작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놀라운 ‘부흥’이 시작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영적 승리’가 보장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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