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 선교회 수원지구

  home :: 신앙인물연구


0
 584   30   1

이        름  
   대표선교사 (2019-08-11 08:12:24, Hit : 119, Vote : 5)
제        목  
   동편 이스라엘 지역들!
☀참고-헤르몬산(Mount Hermon)(북쪽)
레바논과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국경지대에 솟아 있는 산으로 이스라엘의 최고봉인 헬몬산은 그 정상 높이가 해발 2,814m다. 헬 몬산의 폭는 약 30km이며, 연중 약 1500mm 이상의 강우량이 기록되는 지역이다. 헬몬산의 강우량은 대부분이 눈으로 내리는데, 겨울 동안 내린 눈은 이른 여름철까지도 녹지 않고 쌓여 있다. 여름이 되면서 서서히 녹은 헬몬산의 눈들은 지표면 아래로 스며들어 헬몬산 주변의 샘들을 통하여 다시 분출된다.
이러한 샘들은 남쪽의 요단강, 북쪽의 리타니강, 그리고 동쪽의 다메섹으로 흐르는 강의 수원지가 되고 있다.
역 사적으로 헬몬산은 이스라엘의 북쪽 경계를 이루는 지역이었다. 모세나 여호수아에게 헬몬산은 눈 앞에 두고 있는 가나안 정복의 최북단 지역이었다.(신 3:8; 4:48; 수 11:17; 삿 3:3)
여로보암 시대에 거대한 신전이 세워진 단(왕상 12:29; 왕하 10:29; 암 8:14)과 헤롯이 아우구스터스를 위하여 세운 로마 황제 숭배 신전이 있었던 가이사랴 빌립보 등도 모두가 헬몬산과 관련된 지역들이다. 1967년 6월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아랍권으로부터 헤브론산 남쪽과 서쪽 비탈 중 약 100㎢의 지역을 골란고원과 함께 이스라엘 영토로 흡수하여 겨울철 스키장으로 개발하였다.

☀참고-아르논(The Arnon)-요르단의 그랜드캐년!
골짜기에 있는 아르논 강은 모압지역의 북쪽에 있는 가장 큰 강이며  아르논(The Arnon)이란  ‘포효’, ‘가파름’ 또는 ‘급류’라는 의미라고 하며 깊고 가파른 골짜기로 인해 고대부터 오랫동안 중요한 경계선이 되어왔다.  구약성서에 모압강이라는 이름으로 언급되었는데, 아르논 골짜기는  아모리 왕국과 모압의 경계 였는데 이스라엘이 정복한 후에는 르우벤 지파와의 경계선이 되었던 곳이다.
아르논 골짜기의 깊이는 낮은 곳이 400m이고, 깊은 곳이 1,000m나 된다고 하며 그 깊이와 넓이의 웅장한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다.
그 깊은 골짜기에 있는 아르논 강은 모압과 아모리의 지역을 구분하는 경계의 강으로 지금은 물이 거의 흐르지 않는 황량하고 메마른 작은 냇물이지만
아르논 강(the River of Arnon)으로 불린 것으로 보거나 물에 깍여진 계곡 바위의 모습은 3500여년 전에나 그 이전에는 지금과 같은 황량하고 메마른 깊은 골짜기이면서도 많은 물이 급하게 흐르는 건너기가 쉽지 않은 큰 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을 아랍이 정복한 후부터 “와디 무집(Wadi Mujib)” 또는 “엘 무집”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와디(Wadi)는 평소에는 물이 흐르지 않다가 우기가 되어 비가 내리면 물이 급하게 흐르며 홍수가 나기도 하는 계곡을 말하며 이를 와디 무집이라고 한단다.
아르논 골짜기는 미국의 그랜드 캐년을 닮았다고 "요르단의 작은 그랜드 캐년"으로 불릴 정도로 깊은 협곡들로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출애굽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이곳을 경유했으며, 모압왕 발락이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하여 발람을 영접한 곳이기도 하다.

☀참고-발람(Balaam)
‘탐식가’, ‘백성을 멸망시키는 자(잡아먹는 자)’, ‘백성이 아닌 자’, ‘타국 사람’이란 뜻. 당시 메소보다미아에서 유명했던 거짓 선지자요 술사(점술가)였다(신 23:4). 유브라데 강가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민 22:5; 벧후 2:15-16).
그는 모압 왕 발락에게 고용되어 세 차례에 걸쳐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때마다 저주를 바꾸어 오히려 이스라엘을 축복하게 만드셨다(민 22-24장). 하지만 싯딤에서의 ‘바알브올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집요하게 이스라엘 백성을 유혹하여 음행을 동반한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하게 함으로써 결국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께 형벌을 받게 하였다(민 25장; 31:16; 계 2:14-15). 그러나 발람 역시 후에 이스라엘 군대에 사로잡혀 살해되었다(민 31장; 수 13:22).
신약성경에서 그를 가리켜 불의의 삯을 사랑하는 자요,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세상과 타협하게 만들어 결국 타락시키는 거짓 교사의 표본이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이단자의 상징적인 이름이요, 또 사악한 우상 숭배자로 지목하고 있다(벧후 2:15; 유 1:11; 계 2:14).
(라이프성경사전, 2006. 8. 15)


☀참고-헤스본(Heshbon)
‘요해’란 뜻. 요단 강 동쪽 약 25㎞ 지점의 고원 지대에 있던 모압 성읍. 출애굽 당시에는 아모리 왕 시혼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이스라엘이 정복했다(민 21:21-31). 가축을 치기에 적당한 곳으로 르우벤 지파에게 할당되었다(민 32:3-4). 그후 사사 시대 때 암몬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전쟁을 일으켰을 때, 사사 입다는 모압의 민족신인 그모스가 지난 300년 동안 이스라엘을 대항하여 이기지 못했음을 지적하며 영유권을 수호하였다(삿 11:12-28). 북이스라엘 왕 아합 사후 헤스본은 모압의 땅이 되었으며, 이사야, 예레미야 선지자에 의해 멸망이 선포되기도 했다(사 15:4; 렘 48:2, 34; 49:3). 고지대라 전망이 좋고 아름다우며 교통의 요충지로서 일찍부터 도시가 발달하여 많은 유물들이 발굴되었는데, 특히 헤스본의 연못은 유명하다(아 7:4).
(라이프성경사전, 2006. 8. 15)

☀참고-길르앗(Gilead)
‘울퉁불퉁한 낙타봉’, ‘강하다’는 뜻. 갈릴리 저지대로부터 사해 북단에 이르며, 요단 강에서 동편으로 사막에 이르는 이스라엘의 땅. 좀더 구체적으로는 동쪽으로 암몬, 서쪽으로 요단 강, 남쪽으로 모압, 북쪽으로 바산에 둘러싸인 지역. 얍복 강에 의해 남북이 나뉜다. 주요 성읍은 북쪽에 많이 펼쳐져 있는데, 길르앗 라못, 길르앗 야베스, 마하나임, 숙곳이 있고, 신약의 거라사 등이 이 지방에 속한다. 해발 약 600m의 고원으로, 물이 많고 방목하기에 좋을 만큼 초목과 수풀이 잘 갖춰진 지역이었다(민 32:1; 대상 5:9; 아 4:1). 포도, 올리브(감람), 유향, 약초 등이 유명한데, 특히 유향은 품질이 우수하여 두로에 수출되기도 했다(겔 27:17).
야곱과 라반이 언약을 맺고 ‘증거의 무더기’(길르엣)를 쌓은 것이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창 31:7-47). 세월이 흐르면서 이곳은 길르앗 산(창 31:25), 길르앗 땅(민 32:1) 등 길르앗(창 37:25) 전체를 대표하는 지역 명칭이 되었다. 출애굽 당시 이 지역은 아모리 왕 시혼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정복하여 길르앗 북부는 므낫세 반 지파, 남부는 갓과 르우벤 지파에게 분배되었다(민 21:24; 신 3:13; 수 13:24-31). 이후 길르앗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길르앗을 지배한 미디안과, 아말렉 군사를 사사 기드온이 물리침(삿 6-7장). ② 사사 입다가 암몬 족속을 물리침(삿 11-12장). ③ 사울 왕이 아모리 왕 나하스의 위협 아래 있던 길르앗 야베스를 구원함(삼상 11장). ④ 다윗 왕이 압살롬의 난을 피해 길르앗 지방으로 피신함(삼하 17:16, 22, 24). 또 길르앗까지 추격했던 압살롬이 다윗 용사들에 의해 죽임당함(삼하 18:9). ⑤ 선지자 엘리야의 출생지(왕상 17:1). ⑥ 북이스라엘의 예후 왕 때 아람 왕 하사엘에게 길르앗 지방을 빼앗김(왕하 10:32-34). ⑦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에 의해 재차 회복되나(왕하 14:25), 다시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셋에게 빼앗기고 주민은 포로로 끌려감(왕하 15:27-29). ⑧ 북이스라엘 멸망 후 유다인들이 거주하나(대상 2:22), 바벨론 포로기 때 암몬 족속도 이곳으로 이주함(렘 49:1). 이 지역은 이방 땅과 인접하여 우상 숭배의 유혹이 심했고, 따라서 호세아 선지자는 길르앗 사람들의 우상 숭배를 엄하게 경고하기도 했다(호 6:8; 12:11).
(라이프성경사전, 2006. 8. 15)

☀참고-마하나임(Mahanaim)
‘두 개의 진(陣營)’, ‘하늘(하나님)의 군대들’(천사들, 창 32:2)이란 뜻. 야곱이 도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으로 오던 도중 그곳에서 하나님의 군대(천사)를 만난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창 32:2). 브니엘 동쪽 10㎞ 지점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원래 므낫세 지파와의 경계선에 위치한 갓 지파의 땅이었으나(수 13:26, 30), 길르앗에 있는 라못과 함께 레위 지파의 므라리 자손에게 할당되었다(수 21:38; 대상 6:80). 사울과 요나단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후 잠시 동안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 왕국의 임시 수도가 되기도 했고(삼하 2:8), 다윗은 압살롬의 반란을 피해 이곳으로 피신하기도 했다(삼하 17:24, 27-29; 19:32). 그리고 솔로몬 때는 12행정 구역 중 하나로 잇도의 아들 아히나답이 이곳의 지방 관장으로 있었다(왕상 4:14).
(라이프성경사전, 2006. 8. 15)

☀참고-시혼(Sihon)
‘청소하다’는 뜻. 아모리인의 왕(민 21:21-24).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통과하기를 요청했으나 이를 거부하고 이스라엘을 공격하였다. 하지만 그는 이 전쟁에서 죽임당하고 말았다(신 1:4, 20, 24-30). 그리하여 시혼의 땅은 이스라엘 백성이 취하였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신 일과 하나님이 그들의 보호자가 되셨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사건으로 종종 언급되었다(신 3:2).
(라이프성경사전, 2006. 8. 15.)

☀참고-옥(Og)  
‘긴 목을 가진’이란 뜻. 르바임 족속으로 바산의 왕이며, 거인이었다(신 3:11; 수 2:10; 13:21; 왕상 4:19). 그는 요새화된 성읍 60개 외에 성벽이 없는 많은 고을들도 차지하고 있었다(신 3:4-5).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시혼을 정복한 뒤 옥을 공격하여 에드레이에서 그를 살해했다(민 21:33-35; 신 1:4; 3:1-13). 이같이 막강한 위용을 자랑하던 옥과 그 군대(신 1:28)의 패배는 두고두고 속담거리가 되어(신 3:1-13),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억 속에 길이 기억되었다(시 135:11; 136:20). 옥의 영토는 르우벤과 갓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에게 분배되었다(민 32:33; 수 12:4-6).
(라이프성경사전, 2006. 8. 15)

☀참고-모압(Moab)
‘아버지의 소생’이란 뜻. 소돔 멸망 후 롯의 맏딸이 아버지와 근친상간 하여 낳은 아들(창 19:37). 훗날 모압 족속의 조상이 되었다. 모압 족속은 그모스를 국가신으로 숭배하였다(민 21:29). 이들은 남쪽으로는 세렛 골짜기, 북쪽으로는 아르논 강을 경계로 하여 사해 동편 해발 900m의 고원 지대를 중심으로 거주하였다(민 21:13; 삿 11:18).
모압의 역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출애굽 이전에 모압의 중요 성읍은 아모리 족의 지배하에 있었다(민 21:13-15, 26-30).
② 모압 땅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지나는 행로에 위치했었는데(신 2:8-9), 모압 족속은 자기 땅 통과를 허락지 않았다(삿 11:17).
③ 이스라엘이 가나안 입국 직전 마지막으로 모압 땅에 체류했을 때, 모압 왕 발락은 술사 발람을 초청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고자 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모압 여자와 음행에 빠지고 모압 우상을 숭배하게 된다(민 22-24장).
④ 모세는 모압 땅 느보 산상에 올라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았고(신 34:1-5), 모압 땅에서 최후를 맞고 모압 땅에 장사되었다(신 34:6-8).
⑤ 사사 시대 때 모압 왕 에글론이 이스라엘을 18년 간 압제하다 사사 에훗에게 살해당했다(삿 3:12-30). 룻이 살던 당시에는 모압과의 왕래가 잦았던 것으로 보인다(룻 1:1, 22).
⑥ 이스라엘 왕정 초기인 사울 때에는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였는데(삼상 14:47), 이때 사울을 피해 도피 생활하던 다윗의 부모를 보호해 주게 된다(삼상 22:4-5).
⑦ 다윗 통치기에는 모압이 정복당하여 조공을 바치게 된다. 이런 현상은 솔로몬 때까지 계속되었고 특히 솔로몬과는 결혼 동맹을 맺게 된다(삼하 8:2, 11-12; 왕상 11:1, 3; 대상 18:2, 11). 솔로몬이 맞은 모압 여인들은 자신들의 신 그모스를 이스라엘로 유입하여 범죄의 빌미를 제공한다(왕상 11:7, 33).
⑧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 때까지 이스라엘을 지배를 받다가 아합 사후 모압 왕 메사가 독립을 선언했다. 이 일로 이스라엘 남북 왕국과 에돔 연합군의 공격을 받았으나 극적으로 물리쳤다(왕하 3:4-27).
⑨ 남유다의 여호야김 왕 때 유다의 혼란기를 틈타 유다를 공격하여 치명타를 안겼다(왕하 24:2).
⑩ 다른 주변국들과 마찬가지로 앗수르와 바벨론으로부터 끊임없이 침략과 지배를 받았다(사 15-16장; 렘 48장; 암 2:1-3; 습 2:8-9). 그리고 B.C. 5세기경에는 나바테아 왕국에 편입되었다.

모압의 특징과 멸망(심판) 예언
모압은 근친상간의 부정한 관계로 출발한 민족이었다(창 19:33). 우상 그모스를 숭배했고(왕상 11:7), 가증한 미신적 행위가 성행했다(렘 27:9). 그들은 비록 물질적으로 부유했으나(렘 48:1, 7), 자고하고 교만했으며(렘 48:29), 거짓 만족에 취해 있었다(렘 48:11). 예언자들은 이 같은 모압의 행태를 바라보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될 것이며(암 2:1-3), 진멸되어 포로가 될 것이고(사 11:14; 렘 27:8), 그 땅은 폐허가 될 것이라(사 15:1-9) 예언했다. 결국, 그들은 교만과 거짓과 우상 숭배 등으로 인해 심판을 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사 16:6).
(라이프성경사전, 2006. 8. 15)

☀참고-메드바(Medeba)
‘물이 많은 시내’란 뜻. 요단 동편 아르논 강 북쪽 약 30㎞ 지점에 위치한 모압 성읍. 남북을 잇는 국제 도로(대상로)의 길목에 있다는 중요성 때문에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출애굽 당시 아모리 왕 시혼의 성읍이었으나 이스라엘이 정복하여 르우벤 지파의 기업이 되었다(민 21:30; 수 13:9, 16). 그후 암몬 족속의 소유가 되었는데, 다윗은 군대장관 요압을 시켜 이곳을 정복했고(대상 19:17), 솔로몬 시대까지 이스라엘 영토로 남아 있었다. 모압 비석에 의하면, 북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이 다시 이곳을 정복하여 북이스라엘의 지배가 약 40년 간 지속되었으나 다시 모압 왕 메사에 의해 재탈환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왕하 3:4-27). 이사야 선지자는 모압의 멸망을 선포하면서 메드바도 함께 멸망할 것을 경고하였다(사 15:2).
(라이프성경사전, 2006. 8. 15)

이전 글
   H. 제이콤스 "축복을 바라지만 말고 당당히 요구하라!"

대표선교사  
2019/08/13 
다음 글
   필립 얀시 "잠시 교회를 떠나 있을 때면 고통 받는 쪽은 언제나 나였다"

대표선교사  
2019/08/13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mnetv